노부의 늙어감을 아쉬워하며 세운 효심 어린 정자
안동시 도산면(陶山面) 분천리(汾川里)에 있는 조선시대의 누각. 1973년 8월31일 경북유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됐다. 조선 중종 때의 문신이며 학자 농암 이현보의 별당이다. 1512년(중종 7) 이현보의 나이 46세 때 부모를 위해 분강(汾江) 기슭의 농암(巖:귀먹은 바위) 위에 처음 지었으며, 1548년(명종 3)에 중창했다. 현재의 건물은 조선 후기에 다시 세운 것이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전열칸은 2중보를 걸었으며, 보는 홍예보이고 그 위에 포대공(包臺工)을 세웠다. 툇보에도 홍예가 보인다. 가구(架構)으로 보아 구형(舊形)을 간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현보가 이 당을 짓고 나이 90세를 넘긴 노부의 늙어감을 아쉬워해 하루하루를 아낀다는 뜻에서 당호(堂號)를 애일당(愛日堂)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원래 낙동강 연안의 분천리에 있었는데,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어 1975년 원래의 위치에서 서쪽으로 1km쯤 떨어진 영지산(靈芝山:436m) 남쪽 기슭으로 이건해 보존하고 있다. 이용구(李龍九)가 소유·관리하고 있다.
긍구당·사랑채 등 방 12개 일반인 고택체험 가능
△농암종택
퇴계옛오솔길 종점에 농암종택이 자리잡고 있다. 조선시대 대표적 문인인 농암 이현보 후손이 지금도 이곳 농암종택에 거주하고 있다.
1370년 무렵에 지어진 농암의 원래 집터는 도산서원 1㎞ 아래인 분천리에 있었지만 안동댐 건설로 인해 물에 잠기는 바람에 후손이 지금 자리로 집을 옮겨왔다.
농암종택은 고택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일반에 개방됐다.
독립된 별채인 긍구당과 사랑채, 대문채 등 12개 방을 이용할 수 있다. 주변 풍광이 아름답고 고택의 예스런 멋도 일품이어서 안동을 대표하는 고택 민박집으로 손꼽힌다. 농암종택이 자리한 도산면 가송리에는 고산정이라는 옛 정자도 있다. 낙동강변 기암절벽 아래 자리잡아 풍광이 빼어나기로 유명하다.
퇴계옛오솔길은 도산서원과 봉화 청량산을 잇는 약 10㎞ 길로, 낙동강과 봉화 청량산이 한데 어우러져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도산서원에서 시작해 단천교와 녀던길비석, 강오솔길, 전망대, 학소대 등을 거쳐 농암주택까지 이르는 데 약 4시간 소요된다.
퇴계옛오솔길은 말 그대로 옛날 조선 성리학의 거두인 퇴계가 걸었던 길로, 퇴계는 이 길을 통해 청량산으로 학문 수양을 떠났다. 퇴계뿐 아니라 안동을 중심으로 한 퇴계의 후학은 물론 경상도 선비들 역시 퇴계의 길을 따라 걸으며 이 길에서 퇴계의 사상을 되뇌었다.
그래서 퇴계오솔길을 `학문의 길`이라고도 일컫는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