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성대 천정의 정(井)자형 천정방틀, 한옥 우물의 정(井)자형 돌 방틀
1962년 국보 제31호로 지정된 첨성대(瞻星臺)는 신라의 왕궁이 있었던 반월성 동북쪽에 위치한 신라 중기의 석조 건축물로, 신라 제27대 선덕여왕(632~647)대에 세워진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천문대로 알려져 있다.

362개의 다듬은 돌을 사용하여 원통형으로 축조한 첨성대는 두께 30cm 정도의 화강석으로 27단을 쌓아 만들었는데 이것은 선덕여왕이 27대 왕임을 상징한다는 해석도 있다. 꼭대기의 천정 돌은 흡사 우물방틀(우물 위에 네모나게 귀를 맞추어 짜 놓은 틀)처럼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마감되어 있다.

첨성대에 관한 최초 기록인 삼국유사는 첨성대의 건립시점을 선덕여왕대로 밝히고 있고 삼국유사 이후 사서에는 이에 반하는 기록이 보이지 않으므로 선덕여왕대에 건립된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보다 정확한 건립시점에 대해서는 세종실록지리지에 선덕여왕 2년(633)설, 황룡사 9층 목탑(645) 동시 건립 설, 선덕여왕 말기(645~647)설, 선덕여왕 몰년(647)설 등이 있다.

이 중 말기 설에 의하면 선덕여왕이 첨성대를 통해 불교 세계의 중심을 상징하는 수미산의 제석천(帝釋天)을 주관하는 제석신이 이 땅에 강림해 자신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기를 고대하였고, 죽은 후에 수미산의 정상 도리천(?利天)으로 환생하기 위한 통로로 세웠을 것이라고 전한다. 여기서 첨성대를 현실세계와 천상세계를 연결하는 상징적인 `우주 우물`로 생각했다고 볼 수 있다.

신라인들은 우물의 근원이 하늘의 은하수와 별에 있다고 믿었고 우물은 하늘을 봐야 한다고 하여 우물을 덮지 않고 관리하였다. 하늘의 은하수가 내려와 맑은 우물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불교적 세계관에 젖어 있던 신라인들은 첨성대를 다른 세계와 연결하는 `우주 우물`로 표현한 것이 아니었을까. 신라의 시조 혁거세(赫居世 B.C69년~A.D4년)와 그의 부인 알영(閼英 B.C53년~?)이 우물가에서 탄생했다는 사실과, 진흥왕 4년(635)에 밀교를 처음 들여온 명랑법사(明朗法師)가 우물을 통해 용궁을 드나든 내용에서도 우물을 인식한 신라인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저승을 우물 속 깊은 곳과 통한다고 여겨 황천(黃泉)·구천(九泉)이라 부르고 사람이 죽으면 지붕위에 올라가 망자의 이름을 외치거나 우물로 달려가서 머리를 들이민 채 망자의 이름을 부르는 초혼(招魂) 풍속 또한 우물이 저승세계와 연결된 공간임을 시사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우물을 우주의 중심으로 인식하는 `우주 우물`의 세계관을 지녔던 것이다.

지금도 필자는 첨성대를 지나노라면 시골집 우물이 생각난다. 요즘 시골에 가면 옛 우물들이 덮인 채 방치된 곳이 많다. 별이 빛나는 밤 신라의 첨성대와 우주를 연상하면서 한번쯤 덮인 우물 덮개를 열고 우물 속을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영남이공대 교수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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