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이국적인 풍경, 그러나 사라진 현실

1930년대 일본에서 유행했던 문화주택의 하나.
<산상정> ……………………………………………………………………………………… 김광균

카네이션이 흩어진 석벽 안에선

개를 부르는 여인의 목소리가 날카롭다.

동리는 발밑에 누워

먼지 낀 삽화 같이 고독한 얼굴을 하고

노대(臺)가 바라다 보이는 양관(洋館)의 지붕 위엔

가벼운 바람이 기폭처럼 나부낀다.

한낮이 겨운 하늘에서 성당의 낮 종이 굴러 내리자

붉은 노트를 낀 소녀 서넛이

새파란 꽃다발을 떨어트리며

햇빛이 퍼붓는 돈대 밑으로 사라지고(…)

1930년대에 우리나라의 근대적 풍경이 완성되었다. 도시적 면모가 어느 정도 갖춰지면서 문학에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가장 적극적으로 반응한 것이 바로 모더니즘 문학이다.

그러나 모더니즘 문학은 근대의 풍경을 다루면서 그 속에 담긴 미묘한 현실적 문제들을 외면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것은 당시 일제의 검열제도가 완비되어 작품에 대한 조직적인 탄압이 가해졌고, 문인들 또한 이런 탄압을 내면화하여 현실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을 기피하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또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모더니즘문학이 지닌 본질적 속성이 사회비판적인 시선과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근대의 풍경을 도시적 감각으로 재현하는 이런 문학의 공간에 현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깃들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근대 문명이 옹호의 대상이 되므로, 그것의 형성에 영향을 끼친 현실적 조건은 부차적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었다.

모더니즘 문학은 이런 두 가지 조건, 즉 물리적 탄압이라는 현실적 문제와 사회비판적 시선의 외면이라는 문학적 본질이 서로 호응하여 형성된 문학이라 할 수 있다.

시에서는 특히 도시적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제시하여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이미지즘이라는 유파가 이런 경향을 잘 보여준다.

이런 경향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김광균을 들 수 있다. 그는 길을 “풀어진 넥타이”로 묘사하고, 구름을 셀로판지로 비유하여 도시적 이미지를 시에 적극적으로 도입하였고,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와 같은 신선한 표현으로 우리의 감각을 새롭게 하였다. 그런데 이런 근대적 이미지 속에 부정적인 현실은 다루어지지 않는다.

김광균의 `산상정(山上町)`도 이런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이 작품의 제목은 `산위의 집(마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다른 마을을 내려다보는 지점에 세워진 이 집은 노대(발코니)가 있는 양옥집으로 석벽으로 둘러 싸여 있다. 그 집에서는 피아노 소리와 샴페인 따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이처럼 이 작품은 이국적인 근대 풍경을 다루고 있다.

1936년에 발표된 이 작품에 나오는 `산상정`은 구체적으로 군산에 존재했던 실제 지명이다.

김광균은 1932년에 군산에 있는 경성고무공업주식회사에 입사하여, 1938년 서울 본사로 올라오기까지 6년 동안 군산에서 근무하였다. 따라서 이 시의 지명은 군산의 지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산상정의 모습은 위의 시가 발표되기 6년 전, 김광균이 일본의 프롤레타리아 잡지 `전기(戰旗)`에 일어로 발표한 산문에 보이는 “산위의 별장”과 거의 동일한 소재로 보이지만 접근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거기에서 김광균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소작인을 ××(착취)해 세운, 산위의 별장에 피아노 음이 새어나온다. 마을 아래에는 오늘도 우리의 노역과 눈물이 계속된다.”

여기에서 그는 “산위의 별장”이 식민지의 소작인을 착취해 세운 건물로 지목하고 있으며, 이 건물이 있는 동네 아래에는 식민지 민중의 노역과 눈물이 계속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산 위의 별장 마을과 그 아래의 가난한 식민지 마을이라는 구도는 두 작품에 공통되고 있지만 시선은 완전히 정반대이다.

산문과 시에 나타나는 이 `산상정`의 판이한 모습에 우리는 당황하게 된다. 산문의 `산상정`에서 나타나던 현실비판적 시선은 시에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30년대 중반에 우리 문학에 전면적으로 등장한 이 이발소 그림 같은 이국풍경에서 비판적 시선은 어디로 간 것일까.

이 현실의 소멸을 제대로 살펴보는 것이 우리 근대문학을 이해하는 한 방식일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의 모더니즘문학, 더 구체적으로 이미지즘문학의 본질을 더욱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산상정`이라는 작품은 문학과 현실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경북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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