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류사 벽화, 호류사 벽화 확대
삼국사기 열전에 신라의 화가 솔거(居)가 황룡사 벽에 노송을 그렸다는 기록이 있다. 출생과 활동시기 등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가 뛰어난 화가였음을 전하는 기록과 일화는 남아 있다. 그 중 통일신라시대 때 황룡사 벽화 `노송도`를 그려 까치를 날아들게 한 솔거의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다.

솔거의 활약시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나 그가 그렸다는 단속사, 황룡사의 완공시기와 백률사의 중수기 가운데 신라 문무왕의 장남인 신문왕 때 당나라의 승 요가 신라에 와서 솔거로 개명했고, 물(物)·생(生)·영(靈)에 극진하여 많은 사람들이 신봉했으며, 왕도 조서를 내려 솔거로 명하였다는 기록으로 미뤄 통일신라시대에 활동하였던 화가일 가능성이 짙다.

솔거의 일화에 “솔거는 집이 가난해서 어릴 때부터 화전(火田)을 하면서 지내야 했다. 어느 날 솔거가 마당에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한 스님이 지나가다가 솔거의 그림을 보고 깜짝 놀라 솔거의 아버지께 사정해서 황룡사로 가게 했다. 그 후 솔거는 밤낮으로 그림만 그렸고 그림 실력이 나날이 좋아져 마침내 법당의 네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소나무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소나무 그림 밑에서 쉬고 가자고 하였고 동물들 중에서 눈이 가장 밝다는 새들조차도 소나무 그림을 보자 나뭇가지 위에 앉으려다 벽에 부딪혀 죽고 말았다”고 한다.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시작해 선덕여왕 14년(645)까지 무려 92년에 걸쳐 완공된 황룡사가 고려 고종 25년(1238) 몽골의 침입으로 전소되면서 솔거의 벽화도 함께 소실되어 지금은 안타깝게 전설로만 남아있다.

그렇다면 이제 솔거가 남긴 그림은 전무하다는 것인가.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에 따르면 극락전은 고려 명종 2년(1172)에 번와를 하였고, 조선 중종 9년(1514)에 벽화를 중수하였으며 선조 26년(1593)에 임란으로 전소된 후 영조 26년(1750)에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누가 그린 얼마나 소중한 벽화이었기에 벽화를 중수한 기록이 남아 있단 말인가. 이를 근거로 2009년 극락전 조사를 갔을 때 천정에 설치한 연등에 가려 보이지 않던 불에 그을린 벽화를 마침내 찾았다. 지난 주 문화재 산책에 불국사 대웅전의 비선도로 잘못 소개된 사진이 바로 극락전의 비천도이다.

필자는 너무나 놀라 담징(曇徵)이 그린 일본 나라(羅) 호류지(法隆寺)의 금당벽화와 비교해 보았다. 솔거와 담징은 동시대의 화가로 그 화풍이 닮지 않았을까하는 마음에서였다. 보살의 도톰한 뺨과 가름한 눈썹이 흡사했다. 좀 더 과학적인 방법으로 조사한 후 그 진상이 밝혀지겠지만 불국사 극락전 비천도가 솔거의 벽화이기를 기대해 본다.

영남이공대 교수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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