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열차의 식당칸 풍경(좌)경인선에서 운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기관차(우)
<기차> ………………………………………………………………… 김기림

근대에 기차가 등장하였을 때, 최남선은 `경부철도가`에서 “우렁차게 토하는 기적 소리”를 찬양하며, 그 빠르기에 “날개 가진 새라도 못 따르겠네.”라며 기차의 긍정적인 면을 높이 평가하였다.

이때 기차는 근대 신문명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최남선은 기차의 엄청난 추진력과 크기라는 피상적인 면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정작 이런 기차가 당대 현실에서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지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다른 신문에 발표된 창가는 동일한 경부철도에 대하여 전혀 다른 시각으로 노래하고 있었다. “경부철도 빠른 윤거 나오느니 일병이오/ 이골 저골 곳곳마다 일어난 게 의병일세/ 울리나니 총소리요 들리나니 울음이라.”(`우생가`)

이 작품에 나오는 `윤거`는 화륜거(火輪)로서, 당시에 화차(火車), 불술기(불수레) 등처럼 기차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화륜거에서 나오는 이가 일병, 즉 일본병사라는 말은, 경부철도가 문명의 상징이 아니라 군사적 용도로 사용되는 침략과 탄압의 수단이라는 뜻이다. 동일한 대상을 다루지만 이처럼 시각은 상반된다. 하나는 7.5조의 신식음률로 신문명을 찬양하고, 다른 하나는 4.4조의 옛날 음률로 신문명의 폐해를 비판한다.

그러나 역사적 상황과 무관하게 현실적으로나 의식적으로 기차는 우리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던 것은 확실하다. 수많은 시인들이 기차에 관심을 보여주었다. 기차는 그 자체로 시적인 소재이기도 하지만, 기차를 통해 이루어지는 여행이 문학에 더 큰 영향을 끼쳤다.

우리 근대문학의 탄생을 철도에서 찾는 논의가 가능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윤식에 따르면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도 자세하게 살펴보면 철도를 움직이는 증기기관과 관련되어 있고, 이광수 소설을 이끌어 가는 기본 골격도 기차의 힘이며,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 `만세전`의 기본 골격도 기차 여행에 바탕을 둔 여로형 구조이다.

김기림의 시 `기차`라는 시 역시 기차에 대한 양면적인 시선을 잘 보여준다. 이 시에서 기차는 낭만적인 것으로만 그려지지 않는다. 기차는 오히려 낭만과 시적인 것의 반대편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에 대한 관점이다.

시인이 기차의 식당칸에 앉아서 메뉴판 뒷장에 시를 쓰면, 검은 갑옷을 입은 기관차는 커다란 웃음소리로 시를 비웃듯이 지워버린다. 그 시의 내용은 너절분한 생활을 떠나 바다 풍경에 마음껏 몰입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차는 현실과 일탈된 그런 공상적인 소망을 조롱한다. 기차는 냉담한 존재이다. 레일만을 따라가며 풍경이나 바다(“파랑 빛의 로맨티시즘”)와 같은 주위의 아름다운 경치를 무덤덤하게 지나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은 강철의 조끼” 속에 “붉은 정열의 가마”를 지니고 있다고 한 표현을 보면 기차가 여수나 낭만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기차의 태도이다. 속으로는 `붉은 정열`을 품고 있지만 겉으로는 냉담한 기차의 이 태도는 근대의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태도이다. 이것이 바로 근대문학이 지녀야 할 태도이기 때문이다.

안으로 뜨겁고 겉으로 서늘해야 하는 것이 시가 지켜야 할 위엄이다. 그것은 우리의 생리를 억압하는 것이기에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그런 태도 없이는 시의 위엄도 없는 것이다. 이것이 근대문학이 갖추어야 할 유일한 자세다.

김기림의 작품은 바로 이런 근대의 태도를 기차에서 읽고 있다. 낭만과 감상에 빠지지 않으면서 냉정한 태도로 대상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근대가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시적 태도라는 것을 기차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쯤 되면 기차는 단순한 문명의 이기나 침략의 도구와 달리, 시론(詩論) 그 자체이다.

(경북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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