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 이상

일층 위의이층 위의삼층 위의옥상정원에를올라가서 남쪽을보아도 아모것도없고 북쪽을보아도 아무것도없길래 옥상정원아래 삼층아래 이층아래 일층으로나려오니까 동쪽으로부터 떠오른태양이 서쪽으로져서 동쪽으로떠서 서쪽으로져서 동쪽으로떠서 하늘한복판에와있길래 시계를 꺼내여보니까 서기는섰는데 시간은맞기는하지만 시계는나보다 나이 젊지않으냐는 것보다도 내가시계보다 늙은게아니냐고 암만해도 꼭그런것만 같애서 그만나는시계를 내여버렸소

백화점은 근대화 과정의 필연적인 산물이다. 근대 산업혁명은 생산방식의 비약적인 발전과 인구의 폭발적인 도시 집중을 가져왔다. 상품의 대량 생산은 기존의 생산과 소비의 관계에 절대적인 변화를 초래하였다.

이제 소비는 생산의 조건이 아니다. 생산성의 비약적인 향상으로 생산이 소비를 창출할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사회는 대량의 제품을 소비하기 위한 소비 체제로 전환해야 했다. 백화점은 바로 이런 체제의 필요성에 의해 탄생되었다.

그러나 생산조직이 발달하지 못한 당시 조선에 어떻게 백화점의 출현이 가능하였을까. 이에 대해 당시 모더니즘 시인 김기림은 생산 조건은 미비하지만 소비 조건은 완벽하게 갖춘 기형적인 상황에서 조선의 백화점이 탄생한 것으로 판단한다. 이런 기형성은 일본제국주의의 지배 아래 놓인 식민지의 기형적 근대화의 필연적 결과라 할 수 있다.

기형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1930년대 조선에 있어서 백화점은 “도회의 심장”(김진섭)이라고 불릴 정도로 근대적 풍경의 중심이 되고 있었다. 이런 백화점을 중요한 문학적 소재로 고려한 사람이 모더니즘의 기수 김기림과 이상이었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김기림은 1931년의 경성이 “첨예한 근대도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하고 여러 곳에 출현한 “뛰어난 근대적 데파트먼트”를 근대의 상징으로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백화점 중에서 가장 근대적인 공간은 옥상정원이었다. 김기림은 1931년 5월에 `옥상정원`(산문시)이란 시를 발표하여 이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이상 역시 몇 개월 뒤(1931. 8)에 자신의 시, ?운동?에서 옥상정원을 다루고 있다. 이들에 있어서 백화점과 옥상정원은 단순한 소재 그 이상이었다. 즉 그들이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인 근대성의 조건과 미학을 표상하고 있는 핵심 기호라 할 수 있다.

동작의 기계적인 반복과 시간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상의 시`운동`은 모더니즘의 기계주의와 무의미한 근대적 일상을 반영하고 있다. `운동`이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도 이와 관련이 깊다. 이 작품은 단순한 표현을 복잡하게 만드는 기술을 중점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그런 기술은 내용 자체보다는 형식에 대한 중시를 말해준다. 이런 형식적 기법의 중심에 옥상정원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작품에서 옥상정원은 반복적인 `운동` 코스의 중요한 목표이면서 동시에 반환점의 역할을 하고 있다. 반복만이 계속되는 근대 도시의 일상(그것은 백화점의 1층 위에 2층이, 2층 위에 3층이 연속되는 것과 같다) 속에서 시인은 시계보다 자신이 늙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계는 그런 무의미한 반복을 거부하고 멈추어 버렸기 때문이다. 운동을 멈추었기에 늙지 않는 시계와 자신의 대조는 근대적 삶에 대한 성찰이다. 이처럼 이 시에서 옥상정원은 단순한 소재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작품의 탄생과 구조를 결정하고 당대 삶의 방식에 대한 반성적 거리를 획득하게 만드는 것이다.

백화점의 옥상정원은 근대성의 환유로 문학에 등장하였다. 일본에서 도시를 주제로 하는 문학회의 기관지의 이름이 `옥상정원`이기도 하였다. 우리 문학에 있어서 백화점의 등장은 넓은 의미에서 도시적 감성을 바탕으로 하는 구인회(1933)의 탄생과 연계될 수 있다. 이상이 회원으로 참여한 구인회 역시 도시적 감성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바 있다. 이처럼 근대 도시의 상징으로서의 백화점은 당대 문학인의 감수성에 뚜렷한 변화를 가져온 것이 틀림없다. 이런 감수성의 변화와 함께 새로운 문학이 출현한 것이다.

(경북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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