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계산성당 옆 아담한 2층 건물의 서실에서 일점일획을 가지런히 그은 시간들이 필묵을 처음 시작한 기억들이다.

하루하루 수 십장의 신문지 위에 굳은 획들이 펼쳐지고 역입 도출을 시작으로`영자팔법`을 거쳐 당대 서가인 안진경의`쌍학명`을 만나게 된다.

그 후 계산 서실이 없어지고 대봉동 골목안의 한옥집, 죽농 서동균 선생 자택, 아담한 사랑방에 예술지망생 까까머리가 마당 쓸고 마루 닦으며, 서화에 심취한다.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기에 동양미술에서의 점과 선은 어떻게 이루어지며, 전각에서의 고졸미는 어떠한가라는 것이 나를 다듬고 있었다.

진나라의`왕희지``왕헌지`부자의 얘기를 들려주시던 선생의 낭랑한 음성과 동양예술의 다양한 경험을 습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기까지의 나의 개인적 아트스토리요, 깊숙한 내면의 토양이 되었다.

이것은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내 작품 속에 하나의 염색체적 역할을 하고 있다.

70년대 후반, 현대미술의 열기가 가득한 서울을 시작으로 대구에서도 현대미술제가 개최 되었다. 여기에 참가하면서 우리 것을 통한 최소한의 미니멀적 형식과 내용에 푹 빠졌다.

돌이켜보면 국제화의 보편적 형식을 찾으려고 노력한 것도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70년대는 휙 가버렸다.

시간을 훌쩍 넘어 2000년대. 이때부터 나는 중국의 여러 도시를 다녔다. 최근 자주 만난 상하이미술가협회비서장 평론가 주국영씨의 평론을 적으면서 최근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적는다.

“김진혁의 작품 속에는 채색과 투묵에 의한 정취와 특수한 재질의 피부이론에 관한 대화이다. 색채의 자체가 독특한 흥미가 있고 한지 역시 미적문양의 아름다움으로 양자결합에 의한 다양한 정취를 품고 있다. 대다수 한국화가 들은 그림 속에서 정신세계의 이념을 표현한다. 그러나 작가 김진혁은 추상적인 형상에 다양한 재료인 먹과 혼합매체를 이용하여 특수한 지면위에 다각적인 대화를 전개시킨다. `동과정``형과질``음과양`의 대화를 표현해 재미있고 안온한 오리엔탈리즘의 정서를 짙게 느끼게 한다.”

♠ 한국화가 김진혁

- 개인전 21회(파리, 상하이, 지난, 옌타이, 난징,

서울, 대구 등)

-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 cige 베이징 아트페어 참가(2004년)

- 아트 싱가폴 참가(2005)

- 그외 국제 아트 페어 다수 참가

- 학강미술관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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