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가려운가 보다

엉킨 산수유들이

몸을 연신 하늘에 문대고 있다

노란 꽃망울이 툭툭 터져 물처럼 번진다

번져서 따스히 적셔지는 하늘일 수 있다면

심지만 닿아도 그을음 없이 타오르는

불꽃일 수 있다면

나는 너무 쉽게 꽃나무 곁을 지나왔다

시간이 꽃보다 늘 빨랐다

오랫동안 한 곳을 보지 않으면

그리고 그 한 곳을 깊이 내려가지 않으면

시가 꽃이 되지 못한다

가슴 안쪽에 생기는 나무가 더 많아

그 그늘이 더 깊어

`아버지의 도시`(2003)

꽃의 불꽃은 강렬한 생명력을 가지고 타오른다. 그러나 시인은 순수한 생명의 환희에 머물러 있지 못하고 있다. 그 꽃의 생기와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마냥 넋을 놓을 수 없는 일이다. 왜냐면 혹독한 어둠의 추억들, 기억들에 붇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의 가슴 안쪽에 생기는 나무와 그늘은 그로 하여금 더 순결하고 치열하게 시대를 살면서 시를 써야겠다는 단단한 의지 같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시인>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