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색색의 알전구들이 가로수를 장식했다. 행복한 성탄을 알리고 새해를 맞이할 사람들의 기대와 설렘이 도시 전체를 아름답게 뒤덮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가족들과 오붓하게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딸 아이가 말했다.

“가로수에 이렇게 알전구를 감아놓고 밤새도록 불을 켜놓고 있으면 나무들이 잠을 못 잔대요. 나무들이 불쌍해, 아빠.”

딸 아이의 소박한 걱정에 가슴이 멈칫했다. 연말이면 으레 연중행사처럼 꾸며놓은 도심 속 아름다운 불빛을 나는 그저 무심코 지나치기만 했었다. `미관상 좋다`는 이유로, 단순히 축제분위기를 내보자는 이유로 나무들이 고충을 겪는다면 이는 안 될 일이다. 바야흐로 낮은 곳으로 사랑이 흐르고, 모든 만물들에게 행복이 충만한 크리스마스가 아닌가.

명멸하는 알전구들의 빛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름다움은 외양을 치장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며, 모든 것들이 다 평화로울 때 아름다움이 진정한 빛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모두가 함께 평온해질 수 있는 것이 연말연시의 마음이어야 하지 않을까. 알전구가 내뿜는 빛과 열 때문에 잠 못 이루는 가로수를 위해 잠시 불을 꺼두는 것은 어떨까. 어둠 속에서 꿈틀, 생명을 밀어 올리는 나무들의 움직임에 조용히 귀를 기울인다면 알전구로 세상을 밝히는 것보다 더 밝은 빛이 우리 안에 감돌지 않을까. 조용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 서양화가 이병국

·1960년 안동 출생 ·안동대 미대 졸업

·개인전 3회, 제45회 경상북도 문화상 조

형예술 부문 수상, 2008 평화통일 미술대

전 서양화부문 대상 수상

·경북미협 회장 역임

·현재 한국예총 경상북도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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