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흠 시사칼럼니스트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하버드대 마이클 센델 교수의 저서가 지난해부터 베스트 셀러 도서로 우리사회를 달구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비록 미국의 명문대라는 간판을 업었지만 대학에서 강의한 교과서가 모든 계층의 독서인구를 풍미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우리사회의 정의감과 깊은 관계가 있을 것 같다.

사실 87년 6월항쟁 당시 우리국민 모두는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구현하기를 갈구했다. 그후 정치세력들간에는 공정한 경쟁과 민주적 정권교체를 이루면서 이를 지상의 실현 목표로 삼고 정치를 해왔다고 자부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4반세기가 가까워 오는 지금 왜 새삼 `정의`가 사회전체의 화두가 되고 있을까. 그것은 우리사회를 보는 대부분 국민들의 심정이 불의가 우리사회에 횡행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분야에서 왜 우리는 자주 정의가 함몰되는 황당한 현상들을 목격해야만 하는지. 특히 이런 모든 현상들은 정치가 국민들의 정의감을 미궁으로 몰아넣는 데 원천적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최근의 현상들은 또 한번 정의에 목마른 국민들에게 분노의 폭발을 예비하고 있지나 않는지 불안스럽다. 정의를 다룬 번역도서의 폭발적 인기가 왠지 그같은 전조의 불길함을 느끼게 하는 것은 과민 반응일까.

지금 정치판을 보면 도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을 목적으로 정치를 하고 있는지 난해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번 국회들어 이같은 행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폭력국회라 할 수 있다. 국민들의 일상적 법감정으로도 용납되지 않는 국회내 폭력이 상습화되고 있다는 것은 정치가 국민의 도덕성 수준은 고사하고 준법성 수준에도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말해준다. 어떤 말로도 변명이 될 수 없는 정의를 상실한 정치인 것이다. 폭력과 일방통행의 명분은 모두 국리민복을 위한다지만 국민의 눈에는 국민을 무시하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북한의 서해도발로 전쟁이 벌어졌고 피난민들은 아직도 방황하고 있다. 북한은 여전히 일촉즉발의 무력 위협으로 국민은 불안을 벗어나지 못하고, 구제역 피해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축산 농가들과 발생지역은 마치 전란의 황폐 속에 놓인 것 같다. 내우외환 속에 정치가 실종된 것이다. 아니 실종이라기 보다 오히려 물리력에 의존하는 정치 자체가 또 하나의 내우가 되고 있다. 새해 들어서까지 여권은 지도부의 내홍이 오히려 국민의 걱정거리가 되고 야권의 장외투쟁은 국민의 생존과는 거리가 먼 넌센스 대권행보로 비치는 것은 정치인의 정의감 부재를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정당의 최근 행태를 본다면 정치는 당리당략만으로 밀어붙이는 또 다른 폭력이란 의미로 정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전에 우리가 폭력수단으로 집권했던 군부정권에 왜 그토록 피로써 저항했던가. 지금과 같은 폭력 방식의 의회 운영에 앞장서는 정당이라면 결코 권위주의 정부를 비판할 자격이 없고 민주주의를 운위할 정당성이 없다. 특히 한심한 것은 야당인 민주당이다. 소수의석의 야당은 정의와 명분, 그리고 도덕성과 합법성을 업어야 의회내에서 다수 여당을 제압할 수 있고 그것이 민심을 얻는 길이다. 차기에 집권하고 다수의석을 얻으려면 먼저 폭력으로 의회의 시설과 기물을 부수고 단상을 점거하는 등 물리력에 의한 의사진행 방해부터 그만두어야 한다.

새해에는 우리사회가 정의감을 회복하는 정신운동부터 시작해야 희망을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정치에 정의가 흐르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여든 야든 무리의 논리에 맹종하는 정치를 청산하고 정의에 따라 행동하는 정치로 돌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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