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은 내가 인생을 살아온 지 88회를 맞은 미수(米壽)였다. 쌀이 싹을 피워 밥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공기와 물, 농부의 손길이 88번씩이나 갈 정도로 많은 정성이 필요하다는 말에서 유래된 `미(米)`처럼 나 역시 예술가로 한 평생을 지내왔으며 이제서야 예술에 대해 어렴풋하게 알 것만 같다. 하지만 그토록 사랑했고 열정을 쏟았던 나의 예술세계도 쇄약 해져 가고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지 않는 육신 앞에서는 한낮 노화가(畵家)의 욕심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일찍이 고향 이었던 흥남(함남)을 등지고 1947년부터 10여 년간 지냈던 경북 포항은 나의 인생에 있어 교육자이며 예술가의 길을 걷게 해 준 참으로 고맙고 인연이 깊은 도시였다. 전시장이라고 하기에는 보잘 것 없던 공간이었지만 내 생애 첫 개인전의 설레임을 안겨주었던 영일군청 회의실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모습이 눈앞에 아롱거리고 가슴을 뛰게 한다. 그리고 일본유학시절 동경시내를 활보하던 패기와 전시회 준비를 위해 밤을 세었던 젊은 시절의 열정은 아직도 나를 20살 예술가로 만들어 주게 하는 행복한 추억들이다.

또 한 해가 시작된다. 올해는 꾀 많은 토끼처럼 우리 모두에게 즐거운 일만 생길 것 같은 신묘년(辛卯年) 토끼띠 해이다. 대구·경북에 모든 예술인들과 지역민들이 거북이의 우직함과 토끼의 지혜를 함께 겸비해 축복받고 행복해질 수 있는 한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이글을 마무리 한다.

♠ 서창환(徐昌煥, Seu, Chang Hwan)

ㆍ1923년 함경남도 흥남 출생

ㆍ개인전 30회

ㆍ조선일보 주최 현대작가 초대전 출품

ㆍ경상북도 문화상 수상

ㆍ대구광역시 미술대전 초대작가·심사위원 역임

ㆍ대구광역시 미술대전 초대작가상 수상

ㆍ대구광역시 미술대전 심사위원장 역임

ㆍ일본 태평양 미술회 초대출품

ㆍ국민훈장 동백장 수훈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