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종 시인
안동서 시작된 구제역이 전국적으로 번져 학살당한 우공(牛公)만도 30만마리를 넘어섰다. 구제역이 처음 발견된 것은 안동시 와룡면의 한 마을에서 였다.

안동시 와룡면이라면 생각나는 어른이 있다. 안동교육대학 초대 교무과장으로 처음 시작된 안동교대의 기틀을 확고히 다지던 남재수 교수님이 생각난다.

우공처럼 머리가 크고 눈망울이 굵은 박력이 넘치던 남 교수님이었다. 필자는 그때 안동교대 첫 입학생으로 안동교대 학보 편집국장을 맡고 있었기에 교무과장을 맡고 계시던 남재수 교수님과는 필자가 버릇이 좀 머시기 하여 안타깝게 해드린 일도 더러 있어 지금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남 교수님은 내가 교대를 졸업하던 해인 1967년 첫 시집 `오뉘`를 냈을때 내가 배운 교수님들 중 가장 기뻐하셨다는 유중선 교수님의 전언을 듣고 남 교수님의 대인(大人)다운 금도에 내심 `존경의 념`이 더 깊게 심화됐다.

몇해전 남 교수님은 80대 중반의 향년으로 서거하셔서 와룡면의 선산에 안장되셨다. 구제역이 남 교수님의 유족과는 무관했으면 좋겠다. 그러기를 빈다.

와룡면 구제역이 발생한 마을의 500m 반경 안에 사는 다른 마을 축산농가 사람들이 구제역 발생 직전에 단체로 베트남을 다녀왔음이 밝혀졌지만 쉬쉬로 일관하고 있다. 애국기업 삼성이 벌어들인 무역흑자를 불필요하고 무분별한 외국관광 나들이로 심각한 적자를 보게 된다.

해외여행이 자율화가 돼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누구든지 해외를 다녀올 수는 있다. 외국을 갈때는 단순한 오락성 나들이가 아닌 해외유학, 기술연마, 무역활로 개척 등 상당하게 창조적인 사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국가에 아무 이익도 되지 못하는 갔다 오나 마나 한 소모성 해외관광은 국가정신이 조금이라도 있는 국민이라면 스스로 자제해야 한다.

농민들도 일반국민들도 당국의 `불필요한 외유자제`를 소귀에 경 읽는 격으로 흘려 들어서는 안된다. 1980년대 중반부터 실시된 중국여행 자유화 때문에 그전에는 없던 구제역이 이때부터 국가의 골칫거리로 등장하게 됐다.

구제역 국가를 다녀왔을 때는 입국 때 공항에서 소독검역을 해야 함에도 소독을 회피해 죄없는 우공들만 애매하게 목숨을 뺏기고 있다. 무분별한 외유로 추정되는 구제역 전염으로 전국적으로 소가 30만 마리가 비명 횡사하게 됐다.

소는 단순히 축생이 아니라 축산농가에게는 자녀와 다를 바 없고 애정을 가지고 사육한다. TV에서 딱 한 번 살처분 된 소의 처참한 모습을 보았다. 소도 제대로 커서 도살하면 소가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사람들이 쇠고기를 먹으면 소가 사람 몸의 일부가 되니 인도환생한다고 볼 수 있다. 없는 광우병을 가지고 난동을 부리던 화상들이 한우 30만 마리가 학살돼도 입도 벙긋 안한다.

나라를 해코지하는데만 은사를 받은 비국민들이여, 운동을 하기 전에 바른 마음부터 가져라. 천성산 터널 반대를 하던 도룡농 애호가들은 지금은 어디에서 무슨 꿍꿍이 속을 다지고 있나? 천성산 터널로 철마가 달려도 걱정하던 도룡뇽은 외려 개체수가 불어났다. 무슨 운동을 하든 활동을 하든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양심을 잃지 말고 살아야 한다.

더이상 억울한 우공의 학살이 없도록 구제역 예방접종을 실시해 우공들이 한국 국민 신체의 일부로 인도환생하도록 적극적인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글은 마무리하려고 하니 갑자기 묘안이 떠오른다. 한우를 사육하는 농가에서는 소에게 좋은 음반을 들려주면 소에게 엔돌핀이 생겨 구제역균을 물리치게 될 것 같다. 밑져봐야 본전이니 우공들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어 추운 겨울을 잊게 해 주면 이래 저래 좋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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