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출신의 이길구 한국동서발전 사장은 영남대 경영학과와 성균관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1975년 한전에 입사했다. 한전뉴욕사무소 부장, 한전 신규사업추진실장, 부산지사장, 경기북부지사장을 거쳐 한전 필리핀 법인장을 지낸 그는 지난 2008년 한국동서발전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취임 이후 `30대 개혁과제`를 선정해 조직, 인사, 발전사업 등의 각 분야별로 실질적 개혁을 시행했다. 또한 직무성과연봉제 도입, 조직 슬림화를 통한 효율적 경영조직으로 재개편, 자율책임경영체제 도입 등 전력그룹사내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최첨단 IT 기술과 발전 운영기술을 접목한 신개념 설비관리 시스템인 POMMS를 통한 예측진단을 시행함으로써 전력생산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했다. 특히 필리핀 풍력발전사업, Cebu 유동층발전소 운영사업, 아이티(Haiti) 디젤발전 사업, 베트남 남딘지역 석탄발전소 건설 및 운영 공동추진 등 괄목할만한 해외프로젝트를 성사시켰다. 이 사장을 만나 어린 시절 고향에 대한 추억과 한전시절, 그리고 동서발전 취임 이후 해온 일들과 포부 등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어릴 때 꿈은 무엇이었습니까.

▲어릴 때는 판·검사가 꿈이었다. 경주에서 양동초등학교와 안강중학교를 졸업하는 등 성장과정에서 꿈이 비지니스맨이나 사업가로 바뀌었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해 보니 사업을 하려면 자금도 있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했는데, 한전 자회사이긴 해도 사장이 됐으니 나름대로는 꿈을 이룬 셈이다.

-어린 시절 에피소드는

▲유치원시절 전투가 심해서 6·.25직후여서 수시로 죽고 다쳤다. 큰 사건이라면 5~6세때의 일로 기억하는 데, 4명이 같이 놀다가 수류탄이 터지는 바람이 3명이 죽고, 나만 살아났다. 그 때 나도 왼쪽 무릎아래 관통상을 입었다.

-고향 마을의 추억이라면

▲어릴 때는 공부는 안하고 뛰어놀았던 기억이 많다. 지금도 친구들 만나보면 60이 넘은 나이에도 이상없이 건강한 것은 어릴 때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맑은 물 마시고, 야채 많이 먹고, 많이 뛰고 걸었다. 그때 건강을 쌓은 것 아닌가. 그렇게 산에서 진달래 따먹으며 흔한 시골아이처럼 자랐다. 그 당시 대구에는 자동차가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전기도 안들어왔다. 촛불켜놓고 시험공부를 하는 호롱불세대였다. 또 사라호 태풍이 불었을 때는 학교 복도가 천장에 붙어버리는 바람에 복도 밑으로 지나다녔던 기억도 난다. 그래서 `신수정`이란 이름의 정자에서 공부를 하기도 했다. 지금은 이런 정자가 문화유산에 들어가지만 그때는 정자가 우리들이 살고 생활하는 곳이었다. 또 양동에서 생활하다보니 대학졸업하고, 직장에 다녀도 어른에게 서서 인사하는 것은 어색했던 기억이 난다. 고향에서는 어른에게 큰 절로 인사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장례도 유교형식을 따라 보통 5일장이었다.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이나 이휴원 신한투자 사장, 이태식 전 주미대사, 이동우 청와대 정책기획관 등이 집안 사람들이다.

-한전에 입사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그 당시는 취직이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한전이 경쟁률이 가장 높았다. 그래서 제일 좋은 직장으로 알고 입사했다.

-해외근무경력이 많은 것 같다.

▲미국 LA에서 1년을 근무했다. 또 원자력 발전소 건설때문에 뉴욕에서 3년 반 근무를 했다. 주기기 계약관리, 공기관리, 품질관리 업무를 하면서 기자재 구매업무를 맡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내로라하는 큰 금융기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로벌 스탠다드를 익혔다. 필리핀 해외사업부에 있을 때는 사업마인드를 키웠다. 한국계 기업인들을 많이 만나면서 공기업의 문제점을 파악하게 됐다. 공기업은 경쟁의식 없이 무사고로 관리하고, 검사기준만 맞추면 된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쟁, 마케팅, 파트너십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그때의 경험이 동서발전에 와서도 해외사업과 마케팅에 큰 도움이 되고있다.

-한전에서 분리된 동서발전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남다른 각오가 있었을 것으로 보는데.

▲공기업이라고 해서 비효율, 방만이란 말이 안나오는 좋은 회사로 만들어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그래서 회사 개혁에 나섰다. 인원을 줄이고, 조직을 개편했다. 공기업은 대체로 관리자가 많다. 10~20명이 2중 3중으로 관리를 한다. 그래야 사고가 안난다고 생각한다. 또 발전소 운영인력도 많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인력을 대폭 줄이고, 신규건설로 인력을 돌렸다. 특히 동서발전은 기술회사인데도 기술업무를 등한시해왔다. 그래서 용역을 많이 주고 있었다. 나는 우리 회사의 영역에 관계되는 것은 용역을 주지 않고, 우리가 다 하도록 했다. 그 결과 최근에는 30MW우드칩 발전소를 우리가 설계했고, 정비도 우리가 맡았다. 관리부문에서 핵심진단업무에 50명, 해외 신재생에너지에 60~70명을 빼내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예전에는 보고·분석보고서가 한해 6천건에 달했는데, 60%를 줄이고 슬림화했다. 사장취임 때 일류회사로 만들어 보겠다는 신념을 갖고 왔으며, 지금도 그 마음에 변화가 없다.

-한국동서발전은 어떤 회사인가.

▲동서발전은 설비용량 9천509MW로 국내설비용량의 13%, 우리나라 전력 생산량 기준 12%를 점유하고 있는 전력회사다. 현재 울산, 당진, 호남, 동해 화력 발전소와 일산열병합 발전소, 산청양수 발전소 등을 가지고 있으며, 2009년 매출액은 3조9천200백억원, 당기순익은 1천70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매출액은 4조5천억원, 당기순익은 2천100백억원으로 사상 최대실적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동서발전이 공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고 들었다. 어떤 제도인가.

▲공기업의 가장 큰 문제는 일을 잘해도 대우를 동등하게 한다는 점이다. 그러면 기를 쓰고 잘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닌가. 또 이제까지 업무고과를 보여주지 않았는데 업무고과 공개가 필수다. 그래야 기록과 관찰을 잘 할 수 밖에 없다. 동서발전의 직무성과급형 연봉제는 동일 직급이라도 개인성과와 직무에 따라 연봉이 결정되는 제도다. 1~2직급 간부직원들의 담당직무에 대한 난이도, 책임정도, 전문성 등을 감안해 보직 직무에 따라 7등급 차이가 나도록 돼 있다. 개인별 성과와 역량을 반영함으로써 고성과자와 저성과자간 연봉 차등폭이 기존 6%에서 최대 25.3%로 확대됐다. 그러나 아직도 100%시행은 아니다. 직원들에 대한 성과급 연봉제를 도입하려면 노조원의 50%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인데, 어렵지만 계속해 나가려 한다.

-해외사업이 매우 활발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떻게 뛰고 있나.

▲동서발전에서의 해외사업은 제로수준에서 700~800%로 늘었다. 내가 직접 뛰어서 오더를 따온다. 대표이사가 직접 나가서 확신을 심어주고, 의지를 보이며 대통령이나 에너지장관을 만나면 사업진행도 빠르고 의사결정 역시 빠르다. 또 직접 뛰니까 업무를 잘 안다. 해외 사업중 전력분야 해외사업이 경제영역 넓히는데 제일 좋다. 필리핀 세부섬 발전소도 건설부터 운영까지 맡았다. 발전소 건설 총괄하고 발전기기도 우리 기기를 넣고, 하도급이나 시운전도 우리가 했다. 발전소 운전 정비까지 BOO(Build-Own-Operate:건설+소유+운영·시공회사가 건설하고 직접 소유하면서 운영하는 플랜트 건설방식)방식으로 수주하면 50년, 100년, 우리 것으로 계속해서 보수하고, 공급할 뿐 아니라 인력송출도 계속해 고용창출을 이룬다. 직원들은 계속 나가서 국제화교육도 저절로 된다.

-주로 어떤 나라와 어떤 사업을 하고 있나.

▲ 2010년 11월말 현재 7개국에서 9개 해외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13개국 18개 사업을 활발히 개발 중에 있다. 미국, 남미, 동남아 시장 진출에 이어 신흥아프리카 시장까지 진출할 계획이며, 명실상부하게 글로벌 IPP(Independent Power Producer:민간발전사업자-최종소비자에게 전력을 직접 판매할 수 있는 권한이 없고 도매시장이나 소매망을 가지고 있는 전력회사에 전력을 판매하는 발전사업자)로 도약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아프리카, 인도, 도미니카, 아이티, 필리핀, 베트남, 나이지리아, 가나, 짐바브웨 등에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 해 9월말 발전소 4기를 인수했다. 캘리포니아주와 뉴햄프셔주에 있는 바이오매스(생물자원)발전소와 뉴욕주게 있는 가스 및 디젤발전소다. 30년간 발전소를 운영하면서 총 16억달러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206M규모의 풍력발전사업을 벌이고 있다. 필리핀 전체 풍력발전의 1.5배 규모라고 한다.

-사장으로서 지금 가장 애착을 갖고 추진하는 일은 무엇인가.

▲회사를 성장시키는 일이다. 이를 위해 해외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취임 때 동서발전은 해외사업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당시 해외사업성과가 전무한 상태였다. 취임과 동시에 저의 해외인적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는 한편 사내 우수인력을 해외사업에 집중투입해 현재 발전회사에서 가장 우수한 해외사업 성과를 이뤄내고 있다. 동서발전이 세계적인 IPP로 성장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할 생각이다.

-추후 사장으로서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

▲동서발전이 좀 더 활력이 넘치는 조직이 되고, 국제경쟁력을 갖춘 강한 회사를 만드는 것이 사장으로서의 소임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회사에서는 50세가 돼도 초급간부가 되기 어렵다. 이래서야 되겠나. 나는 회사에서 크는 게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려면 회사를 더 키워야 한다. 특히 해외사업 및 신성장 동력분야에 저의 모든 열정을 다할 것이며, 이로 인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최근 직원들이 밤낮으로 영어공부에 힘을 쏟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도 반대급부를 제시해야지 돌아오는 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그런 분위기를 확실히 만들어주고 싶다.

-고향사람들에게 인사말을 한다면.

▲정지용 시인의 향수에 나오는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는 싯구처럼 고향은 언제나 푸근하고 안식을 주는 곳이다. 나에게 큰 꿈을 꾸게 해주고, 키워준 고향이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발전하기를 소망한다.

/김진호기자 kj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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