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대구본부장
귀밑을 때리는 바람이 맵다. 지난 여름의 가마솥 더위를 까맣게 기억 저편으로 내모는 추위다. 이렇게 추워도 봄이 오기는 할까.

저무는 세모에 한 해를 뒤돌아보니, 참으로 숨 가쁘게 달려왔다. 여느 해처럼 사건 사고가 이어졌고 환희와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한 해였다. 그런 중에도 유독 거대한 자연 앞에 인간의 나약함이 두드러진 한 해였던 것 같다. 올처럼 춥고 덥고 또 눈과 비가 많았던 해가 기억에는 없다.

서해에선 북한의 천안함 공격 격침으로 46명의 우리 젊은 해군들이 순국했고 인양 과정에서 UDT 대원 한주호 준위가 희생됐다. 수색 작업에서 어선 금양98호가 침몰돼 어민 9명이 목숨을 잃은 것은 그야말로 억울하고도 고귀한 희생이었다. 서해는 11월엔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또 한 번 전쟁의 실제 상황을 맞아야 했다. 우리 군의 포사격 훈련으로 불안해하는 국민들의 자존심을 되찾아 줬지만 긴장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소용돌이의 한 해였다. 세종시 수정안의 부결은 결국 정운찬 총리의 사퇴로 이어졌다. 6·2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하고 재보궐선거에서 왕의 남자 이재오가 귀환했다. 청문회에서 김태호 총리후보자를 비롯한 일부 지도급 인사들의 부도덕성이 드러났고 그 여파로 일부 장관들의 수명이 덤으로 연장되는 아이러니도 빚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 특채 사건은 몰염치의 극치를 보였다. 미국과의 FTA가 타결됐으나 새해엔 국회 동의를 앞두고 여야가 또 한 번 힘겨루기를 벌일 참이다.

지역의 염원인 동남권 신공항 입지 결정은 3월로 미뤄졌지만 여전히 안갯속이다. 경북 안동에서 발생한 구제역은 경기도, 강원도까지 확산돼 축산 농가 뿐 아니라 전 국토를 유린하고 있다.

우울한 뉴스만 있는 것은 아니다. G20세계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성공리에 열려 대한민국의 저력을 세계에 과시했다. 김연아는 동계올림픽에서 신기록 수립과 함께 금메달로 전 세계적 스타로 등극했고 태극낭자들의 축구가 세계에 한국혼을 과시했다. 코스피가 3년만에 2천을 회복했고 지구 반대쪽 지하 700m 땅속에 갇혔던 칠레의 광부 33인이 69일 만에 전원 생환하는 경이를 지켜봤다.

무엇보다 날씨가 일상생활을 지배한 한 해였다. 연초부터 몰아친 지구촌의 혹한과 폭설에 이은 여름의 장대비와 무더위는 인간의 무력함을 사정없이 짓밟았다. 봄날에는 이상 저온과 일조량 부족, 여름에는 폭염과 폭우에다 열대야라는 인간 한계를 시험하는 기상이변이 우리 일상을 덮쳤다. 대구 노곡동이 두 번씩이나 침수 피해를 당한 데는 기상이변이라는 단어로 설명이 부족하다. 금배추 소동에다 근래 드물게 쌀 수확량이 떨어지는 등 농작물이 흉작을 보였다는 것도 그 한 증거이다.

그러나 100년 만이라는 그 찜통더위와 물난리를 지금 들먹이는 것은 의미 없다. 지금 우리에게는 30년 만이라는 이 추위가 언제 물러갈 것인지가 오직 관심일 뿐이다. 그만큼 우리는 날마다의 일상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고달픈, 아니면 숨 가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 해의 마지막, 되돌아보니 인생이란 그러한 것인가. 900여 년 전 소동파는 적벽에서 배를 띄우고 옛 영웅들의 흥망성쇠를 이렇게 노래했다. “나뭇잎 같은 작은 배를 타고 서로 술잔을 들어 권하니 천지에 하루살이가 붙어있는 꼴이고 푸른 바닷속의 한 알 좁쌀처럼 하잘 것 없는 신세가 바로 우리 인간 아닌가(駕一葉之輕舟 擧匏樽而相屬 寄??(부유)於天地 渺滄海之一粟)” 라고.

기상재해 같은 자연의 위대함 앞에 서면 하루살이같고 좁쌀같기도 하다.

인간의 무력함. 그러나 그 무력함이 무능함 때문은 아닌지, 극복할 수 있는 인재는 아니었는지 따지는 것이 부질없는 짓일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다. 교수신문이 올 한해의 사자성어로 `장두노미(藏頭露尾)`를 선택한 것도 그래서였을까. 어쨌든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은 우리 인간이라는 믿음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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