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에는 생소하지만 조선시대 중요한 의식 중 하나였던 회혼례를 담은 기록화집인 회혼례첩(回婚禮帖)이 국립대구박물관 중세문화실에서 전시되고 있다.

과거 `회혼례`는 혼인한 지 60년 되는 해에 부부가 건강하고 자식들이 무고하며 자손이 번성할 경우에만 열 수 있어 장수와 복록을 알려주는 중요한 의례로 조선시대에는 회갑보다 더 큰 경사로 여겨졌다.

모두 5면으로 구성되어 있는 `회혼례첩`은 행사장면을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그려져 공간감을 극대화하고, 섬세한 필치로 건물과 인물의 세밀한 부분까지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회혼례에서 회혼을 맞은 부부는 신랑과 신부가 처음 혼인식을 치르듯 혼례복을 입고 전안례(奠雁禮)부터 합근례까지의 의식을 치뤘다. 혼례 의식이 끝난 후에는 잔치를 벌여 자식과 친지로부터 장수에 대한 축하를 받았다.

이와 더불어 `회혼례첩`과 함께 조선시대 혼례풍습을 엿볼 수 있는 유물이 한점 더 있는데 바로 조선 17세기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현풍 곽씨 편지`다. 현풍 곽씨 편지(玄風郭氏諺簡)는 곽주가 부인 하씨에게 보낸 편지로 혼례 준비에 필요한 책을 보내라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혼례를 치를 때, 혼례과정에서 필요한 문건을 만드는 방법이나 절차 등을 적어 놓은 책을 참고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에는 곽주의 편지 속에 언급된 책과 같은 자료를 참고해 혼인준비를 하지는 않는다. 대신 어른들로부터 구전(口傳)된 이야기나 혼인을 먼저 한 지인들의 조언을 통해 혼인준비를 한다. 그만큼 절차나 형식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럴 법도 한 것이 예전에 비해 혼인의 준비과정이 단순화되고 절차와 형식도 간소화되었기 때문인데 걱정스러운 점은 혼인의 참 의미마저 사소한 것으로 퇴색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올 연말까지 상설전시 되는 `현풍 곽씨 편지`와 `회혼례첩`에서 오늘날의 모습과는 다른 조선시대의 혼례 풍습을 통해 혼인의 참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은 어떨까? 문의 (053)760-8573.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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