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 / 대구본부장
제목을 정해놓고 보니 먼저 `물`에게 미안하다. 사실 물만큼 스스로 유연하면서도 남에게 이로운 것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나. 그래서 노자도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했다. 모두를 끌어안고 모두가 싫어하는 낮은 곳에도 가기를 꺼려하지 않으니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는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가 대우조선 남상태 사장 연임 로비를 했다는 민주당 강기정 의원의 발언을 두고 여야가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갔다. 강 의원은 대통령 부인과 남상태 대우조선 사장의 어릴 적 인연을 들먹이며 로비 의혹을 제기했다. 파워포인트까지 동원한 그의 폭로는 한나라당과 청와대를 흔들어 놓았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어저께 한 방송에서 “강 의원의 발언이 사실에 가깝다”고 또다시 초를 쳤다. 강 의원의 발언이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뒤에서 아니면 말고 식의 대통령 부인 모욕 사건”이라는 여당 반발에 “영부인 이야기는 이 정도에서 끝내자”고 강 의원을 설득했던 박 원내대표였다. 그리고는 여야가 모두 조용해졌다.

대통령 부인이 돈을 받고 기업체 사장의 연임을 위해 움직였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대통령이, 사실이 아니라면 강 의원이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진실게임 상황에서 정전(停戰) 사태를 맞은 셈이다. 그런데 항간에는 강 의원이 자신의 허물을 덮으려고 이런 로비설을 폭로했다는 또 다른 설이 나와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 검찰의 칼끝이 정조준하고 있는 이른바 청목회 후원금 사건의 한복판에 강 의원이 있는 것이다.

검찰이 청목회 사건 수사대상 국회의원 11명의 사무실을 전격 압수 수색하자 여야가 한 목소리로 검찰을 성토하고 나섰다. 계엄하에서나 있을 법한 국회 유린 사건이라며 격앙된 분위기다. 새해 예산안 심사를 벌여야 할 국회 상임위가 검찰 성토장으로 바뀌었다. 검찰이 민간인 사찰 의혹을 은폐하기 위해 청와대를 향한 대포폰 수사는 대충하고 청목회 수사로 방향을 튼 것이라 주장한다. 그런 검찰이 진짜 사정(司正)대상이라며 대포폰 국정조사를 요구할 기세다.

검찰은 수사 논리에 따른 것이라며 수사로 말하겠다고 맞받는다. 지난주까지 관계자 소환 조사에 이어 이번주부터 국회의원들을 소환하면서 정면 승부도 불사하겠다는 전의를 보인다. 대포폰은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증거라고 국회의원들은 주장한다.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 행정관이 대포폰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에 건네주었다는 것이다. 과연 청와대의 지시 없이 단독으로 이런 행위들이 가능했겠느냐고 한다. 그런데 검찰이 이 부분에 대한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오히려 청목회 관련 수사에 칼을 겨누고 있다고 불만이다.

국민들은 답답하다. 의원들이 힘없는 청원경찰의 불법 후원금을 받아가며 입법 활동을 했는지를 수사하겠다는 검찰을 나무랄 입장도 아니다. 그렇다고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에 청와대가 대포폰까지 동원한 의혹을 `증거가 없다`는 검찰 발표대로 믿을 수도 없게 됐다. 정말 대통령 부인이 로비를 했는가? 사정 칼날을 피하려 한 번 해보는 소리인가?

후원금을 받을 처지도 못되고 총리실의 사찰 대상도 못되는 `팔불출` 국민들은 그저 궁금할 뿐이다. 혹시 대한민국 정치인들이, 검찰이, 국민을 물로 보는 것은 아닌가? 너무 좋아서 탈일 뿐 도무지 흠이 없는 물로. 사실이 아닌 말로 국민을 현혹시키기도 하고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흥분시키기도 하고, 그러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어물쩍 덮어버리는 행위들을 너무 쉽게 반복한다. 자신들이 어떻게 하더라도 국민들이 참아주고 이해해 줄 것으로 착각한 것은 아닌가. 그러나 정치권도 검찰도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물은 한 번 성나면 그 뒤끝은 스스로도 모른다. 책임지지 못한다. 그러니 물을 함부로 보지 마라. 진실 규명 없이 화해하고 끝내는 것을 국민은 원하지 않는다. 국민을 물로 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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