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대숲 너머

장광머리엔 간장독 서너 개 모여 있겠다

때마침 바람도 불고

맘씨 좋은 당숙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지나가겠다

쟁기머리 돌아간 밭둑 위에는

막걸리잔 두어 개 놓여 있겠다

머얼리서 노오란 양은 코주전자 앞세우고

갈래머리 계집애 하나 뛰어오겠다

어이 마시, 시째는 시방 뭣 항가

울아비 막걸리잔 들이키다 말고

먼 산 조각 구름 한번 쳐다보겠다

군사독재시대에 민주화 투쟁에 앞장 서면서 민중적 참여시에 깊이 빠져들어 감옥도 가고 아픔을 겪었던 시인이 고향의 풍경, 아버지가 있는 풍경 앞에서 먼 산 조각구름을 쳐다보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농촌현실이지만 그래도 거기에는 아름다운 사람의 정과 살아가는 정겨운 풍경이 있다. 백철주전자 꼴삭하게 막걸리를 받아오던 어린 시절, 그 구수하고 진한 서정이 코끝에 느껴지는 아침이다.

<시인>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