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형 / 편집국장
`올림픽 파견 선수단 장비…김치, 고추장 등 37개`

1972년 8월 국내 한 일간신문에는 위와 같은 제목의 기사가 났다.

“뮨헨올림픽 참가선수단이 결정되자 태릉선수촌에서는 가능한한 현지의 조건에 적응시키기 위해 식사도 양식위주로, 한국적인 김치와 고추장은 극도로 제한시켰다. 그러나 막상 떠날 때는 조상대대로 물려받아 몸에 밴 김치 고추장 등은 빼놓을 수 없는 선수단의 장비가 됐다. 한국선수단이 뮨헨올림픽으로 가져한 장비는 김치통조림 10상자, 고추장 2상자, 라면과 냉면 등 30상자, 입맛을 돋아줄 마늘 2점, 고추가루, 간장, 된장, 마늘장아찌, 북어, 대구 등에 이른다”

흔히 한민족을 매운 고추에 비교한다. 작은 것이 맵다고. 이같은 비유는 척박한 환경에서 세계무대에서 우승컵을 거머쥔 스포츠선수들에게 자주 붙여졌다.

매운고추로 연결되는 것이 김치다. 한국의 전통식품인 간장, 된장, 장아찌 등의 문화가 숙성을 통한 인고의 세월을 의미하고 있지만 김치 역시 일정기간 숙성을 거쳐야 함으로써 영양학적이고 화학적인 유용성분의 유무를 떠나 한국적인 정서와 맥을 같이한다. 김치조각 하나로 밥을 먹던 시절에도 그 김치는 우리의 반찬문화를 대표했고, 그래서 김치는 일개 반찬의 의미를 뛰어넘어 겨우살이를 준비해야 하는 농경사회에서의 필수문화가 됐다.

그런 김치가 요즘 한국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좀 귀하고 값이 오른다 싶으면 우리는 그 명사 앞에 `?`을 붙인다. ?치, ?송이 등등.

TV나 신문지상을 통해 벌어지고 있는 `금배추` 파동은 차라리 한스럽다.

배추 특별공급이 시작된 한 전통시장에서 김치 3포기를 들고 마치 금을 주운 것 처럼 기뻐하는 주부들의 모습이 연일 신문 1면을 장식했다.

배추를 머리 위로 높이 들고 “심봤다. 배추 심봤다”라고 외치는 장면을 보는 국민들, 아니 볼 수밖에 없는 같은 주부들로서는 안타깝고도 분노스럽다.

한국전쟁 발발 60년을 보낸 지금, 전쟁당시 식량배급을 받기 위해 긴 줄을 늘어서고 서로 먼저 차지하기 위해 아우성을 치는그 생존의 절박한 현장과 무엇이 다른가? 김치 1포기로 민심을 줄세우고 민주주의사회에서의 주권을 농락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것도 단 3포기가 들어간 나이론 그물망을 통해서.

그런데 같은 싯점 국회 국정감사장에도 배추가 등장했다.

“이명박 정부가 평소 서민생활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대형유통업체들의 배만 불린 유통구조 때문이다”“4대강사업으로 경작지 축소가 배추값 파동을 불렀다”는 야당 대표는 즉시 현장정치로 배추밭을 택했다.

여당은 정부의 책임을 질타하면서도 “4대강 사업과 배추값은 전혀 무관하다”“야당의 주장은 억지성, 여론호도성 국민을 속이는 정치공세다”라고 맞서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한 신문지상에 대풍을 이룬 배추밭을 지켜보며 한숨만 쉬고 있는 한 농민의 모습이 실렸다.

배추값이 포기당 1만원을 뛰어넘었지만 그 농부는 도매시장에 내놓아도 6천원은 족히 받을 수 있는 3만포기의 그 금배추를 파종전 이미 산지수집상에게 포기당 300원에 통째로 넘겼기 때문이다. 계약금 500만원을 물리고 계약을 파기하려 해도 배추값이 똥값이었던 것이 연례행사였던 점을 감안하면 단골 수집상과의 거래를 끊을 수도 없는 처지다.

백조는 당연히 흰색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람들 앞에 홀연히 `Black Swan(검은 백조)`이 나타난다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도 발생하지 않은 일이고, 영구히 그런 일은 없을 것이란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이 기상천외한 일은 그래서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한국은 먹을 거리 파동이 칠 때마다 정국이 요동친다. 먹고 살만 하니 먹을 것에 대해 더욱 민감한 것이다. 배추가 없다고 해서, 올 가을 김장을 못담근다고 해서 굶어죽는 일은 없다. 하지만 배추는, 그 배추로 담그는 김치는 이국만리 올림픽에 나서는 대표선수단들에게도 필수의 `장비`인 것과 같이 수확의 대명사요, 풍요와 태평성대의 상징이다.

매사 일이 터진 뒤에 호들갑을 떠는 정부를 어느 국민인들 믿을 것이며, `배추값도 못한` 선동정치에만 혈안이 돼 있는 정치권인들 배추포기 속에 잠재해 있는 서민들의 분노를 진정성있게 헤아린다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우울한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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