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박사로 널리 알려진 김순권(65) 박사가 평생을 거쳐 몰두해온 옥수수 연구의 기반을 포항으로 옮겼다.

김 박사는 15년간 몸담았던 경북대학교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지난 9월 1일자로 포항 한동대 국제개발협력대학원 석좌교수로 부임했다.

부임 이후 한 달 남짓 됐지만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육종연구의 기반이 된 아프리카와 중국 등 해외에서 보냈다.

아프리카에서 귀국한 지난 4일 한동대 연구실로 출근한 김 박사는 모자를 눌러 쓰고 운동화에 점퍼를 걸쳐 입은 모습이 영락없는 농군 차림새다. 평생을 옥수수밭에서 보낸 김 박사에게 양복보다 더 편하고 어울리는 옷차림이다.

김 박사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를 만나든 옥수수 자랑으로 열변을 토한다.

옥수수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작목으로 알맹이와 줄기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최고 작물이다. 더욱이 알맹이는 식량자원으로, 줄기는 그동안 가축사료용으로 이용됐으나 지금은 줄기에서 에탄올을 추출해 바이오 에너지로 사용한다. 옥수수는 식물 가운데 탄소흡수율과 산소 생산량이 가장 많은 친환경 식물이라며 옥수수 예찬론을 시작했다.

이어 세계는 지금 지구 온난화로 인한 지구환경 재앙에 대비하기 위한 저탄소 녹색성장과 미래에 닥칠 식량자원난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결국 옥수수는 지구 인류가 해결해야 할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매우 유익한 식물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옥수수는 우리나라 최대 수입농산물로 연간 1천만t을 수입, 3~4조원의 외화를 낭비하고 있다. 그동안 국내 농업은 쌀생산 중심의 농업정책으로 과잉 생산된 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고 있다. 전체 식부면적 대비 적정량의 벼를 재배, 생산량을 조절하고 나머지 옥수수를 재배하면 쌀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김 박사는 포항으로 자리를 옮긴 이유에 대해 옥수수를 이용한 에탄올 대체에너지 사업에 대한 지속적 연구의 필요성을 들었다.

김 박사는 육종개발에 전념하던 중 지난해 계명대 교수팀과 옥수수 줄기에서 친환경 대체 에너지인 바이오 에탄올을 뽑아내는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에탄올의 대량생산을 위한 단지조성과 사업화를 위한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했지만 정년퇴임으로 연구기반을 잃었고 마침내 한동대에서 길을 찾았다.

한동대는 포스코와 협약을 맺고 김 박사의 모든 연구를 지원하기로 했다. 학교내에 3만여평의 재배 및 연구단지와 에탄올 공장, 국제한동옥수수재단 설립 등을 통해 김 박사의 연구활동을 지원할 계획이다.

김 박사는 “그동안 옥수품종 개발에 전력했으나 지금부터는 대체 에너지 연구에 주력할 계획이다”며 “이제까지 연구성과를 토대로 더욱 연구에 매진해 포항을 세계적인 저탄소 녹색성장의 중심지가 되도록 마지막 열정을 쏟아 붙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 박사는 포항에 대한 인상을 묻자 “마치 고향에 온 느낌이다”고 말했다. 경주시 양남면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어렵게 공부를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포항에서 연상되는 듯 보였다.

포항에서 새로운 연구 터전을 마련한 만큼 지역 사회에 공헌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김 박사는 “이제껏 옥수수 연구에만 매달리며 일생을 농업에 종사했고 이에 따른 많은 연구 성과도 거뒀다”며 “내가 개발했던 품종으로 군위 옥수수 브랜드를 만들었던 것처럼 포항지역 기후 풍토에 적합한 옥수수 품종을 보급하는 등 지역 농업 발전을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70년대에 한국에서 불가능하다는 교잡종 옥수수 종자개발에 성공, 생산량을 3배 이상 올리며 옥수수 박사의 길을 출발했다. 지난 79년 UN산하 53개국이 모여 만든 국제열대농업연구소 초청으로 나이지리아로 건너가 17년 동안 아프리카 황무지에 옥수수종자 개량과 보급에 전념했다. 아프리카에서 농작물 재배를 불가능하게 했던 일명 `악마의 풀`로 불리던 기생잡초 스트라이거를 이겨내는 옥수수 품종을 개발, 기아에 허덕이던 아프리카땅에 생명을 불어 넣는 농업혁명을 일으켰다.

김 박사는 이 같은 공로로 나이지리아 정부로부터 외국인에게 주는 최고의 영예로운 칭호를 받았고 나이지라정부는 김 박사의 공적을 기리는 기념주화를 발행하기도 했다.

지난 98년 국제옥수수재단을 설립해 심각한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에 옥수수 심기 운동을 펼쳤고 최근에는 중국과 몽골, 캄보디아 등 식량부족에 시달리는 아시아 국가에 슈퍼옥수수 품종 보급과 함께 옥수수 줄기에서 에탄올을 생산하는 바이오 에너지 연구에 몰두해 왔다.

김 박사는 아프리카 기아문제를 해결한 공로로 유엔식량농업기구로부터 노벨상후보로 추천된 것을 비롯해 지난 92년부터 모두 5차례나 노벨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김영길 한동대 총장은 “김순권 박사는 옥수수 씨앗으로 식량이 없어 굶주리고 있는 세계의 인류를 구원한 평화의 전도사였고 이제 옥수수를 통해 지구환경 재앙으로부터 인류를 구해 낼 것”이라고 평했다.

/정철화기자 chhjeong@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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