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현들 유배 당시 가옥·죽림서원 복원 목소리

조선시대 사화와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옛 성현들의 유배지로 유명했던 포항시 남구 장기면에는 현재 그 시절의 흔적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비슷한 역사의 전라남도 강진군과는 비교가 되는 부분이다.

강진군의 경우 다산 정약용의 4년간 유배생활을 테마로 다산초당, 동암, 서암, 천일각 등 `정다산 유적지(국자지정 사적 107호)`를 조성, 관광자원화하고 있다.

다산은 1801년 천주교 탄압사건인 신유사옥 때 영일군 장기현으로 유배됐다가 그해 11월22일 강진으로 왔다.

포항의 유배문화를 조명한다

① 유배문화의 고장, 장기

② 다산과 우암이 머물던 자리

③ 성현은 가고 빈터만 남아

④ 유배문화촌으로 활용·보존해야

이후 다산은 다산초당으로 옮겨와 생활했으며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600여권에 달하는 책을 저술했다.

이러한 사료를 바탕으로 강진군은 노후로 인해 붕괴됐던 다산초당을 1957년 복원했으며, 다산의 제자들이 지내던 서암(1975년)과 동암(1976년)을 각각 복원했다.

이 외에도 정자인 천일각, 다산이 찻물을 길어갔던 약천 등도 당시의 모습대로 재현돼 있다.

특히 강진군은 다산초당 남쪽으로 800m 지점에 다산유물전시관을 건립해 다산영정, 다산연보, 가계도, 학통, 다산의 업적 및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강진군은 지난 2005년 7월 `제1회 다산유물특별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다양한 다산 유물 진품 확보에도 노력하고 있다.

강진군의 사례처럼, 포항 장기 역시 옛 사료를 토대로 한 유배문화촌의 복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학계의 목소리가 높다.

비교적 명확한 자료만을 근거로 했을 때, 장기에는 송시열, 정약용, 설장수, 홍여방, 박팽년의 인척들, 양희지, 김수흥, 신사철 등 옛 성현들의 유배 당시 가옥 10채 정도의 위치와 모습 등이 현재에 전해진다.

이를 토대로 전문용역 및 관 차원에서의 연구 관리를 통해 당시 시대상을 복원하고 유배문화촌을 조성, 역사 및 관광자료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상준 향토사학자는 “유배지라고 해서 폄하하는 의견도 있는데, 오히려 학문·사상적으로 걸출한 인물들이 남긴 여러 문화를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후대로서 부끄러워해야 할 부분”이라며 “단순히 역사 자료만이 아니라, 우암의 죽림서원을 복원해 지역 학생들의 한문학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다산이 장기 유배 동안 지은 140여수의 시를 따라가는 산책로 조성 등 지역 관광 인프라 확보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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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우기자 beat082@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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