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형 / 편집국장
유난히 뜨거웠던 지난 여름 어느 주말 본가에 갔다.

팔순의 아버지가 지은지 40년이 넘은 파란 스레이트 지붕의 창고를 가리키며 “장마가 시작됐는데 나락이 다 썩겠구나. 보리고개때는 보리밥 먹는 것도 힘들었는데 요샌 쌀이 남아도니 내다 팔수도 묵힐 수도…”하시며 혀를 차신다.

아버지의 걱정스런 모습이 한주 내내 아른거렸다.

“야야, 내다 팔 쌀이 얼마 안된다고 직접 가져오라는데 무슨 재주가 있어야지. 옛날 같으면 웃돈을 줘도 구할 수 없는게 이맘때의 쌀인데…”

아버지는 몇포대 남지 않은 쌀을 정미소에 내다팔기 위해 궁리를 했지만 정미소에서는 돈 안되는 나락 물량이 넘쳐나니 집까지 와서 싣고 갈만한 손이 없다고 하니 속이 까맣게 탄다.

동네에 유일무이한 고방(정비소)을 찾았다. 그곳엔 대학나온 형은 객지에 나가고 혼자서 대를 이어 정미소를 지키는 후배가 있다. 추수철도 아닌데 쌀포대가 가득 쌓여 있고 쌀을 실은 경운기가 줄을 섰다. 옛 어른들은 추수철 나락을 처분하지 않고 식량이 귀한 이맘때 쌀을 파는 것이다

“형님, 일손이 달려 직접 갈 수가 없네요” 한다. “그럼 트럭이라도 좀 내 줄래, 내가 직접 쌀을 싣고 오마”하자 “그러세요. 죄송합니다”라며 머리를 긁적인다.

40여포대를 1t 트럭에 싣느라 식은땀을 흘렸다.

하지만 정미소에 넘기는 쌀 한포대의 가격은 3만5천원, 작년에 비해 1만원이나 떨어졌다.

한포대씩 옛날씩 저울에 달며 주판을 튕기며 후배가 보여준 총 가격은 40포대에 140여만원.

아버지께 그 영수증을 보여드리자 `우야노, 나락금이 똥금인데...`하신다.

맞다. 그 귀한 쌀값이 금값이 아니라 `똥금`이다.

경북도는 최근 1차 산업인 쌀 산업을 6차산업의 패러다임으로 대전환을 선언하는 쌀 산업 정책을 발표했다.

쌀 산업의 무한변신을 담은 3대 전략과 10대 추진과제를 선정하고 2014년까지 4천400여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풍년농사를 기다리는 농심이야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지만 쌀 재고량은 늘고 소비는 줄고, 가격은 똥값이다 보니 정부도 속이 타는 것은 마찬가지다. `농자천하대본`이란 농경사회의 큰 틀이 태풍에 박살나는 벼논같은 형국이다. 하지만 쌀산업의 패러다임을 전환한다는 정부의 이같은 정책이 농민들에겐 탁상공론식 비전 이상으로 와닿지않고 있다는 점에서 묵은쌀을 헐값에 처분해야 하는 팔순 농군의 주름살은 더욱 깊다.

추석을 코 앞에 두고 있다. 올 추석에도 아버지는 “올 농사는 어떻냐?”라고 조카들에게 물을 것이고 그 여름 뙤약볕에서 농사만을 고집하며 전신이 새까맣게 탄 사촌형님들은 “나락 잘돼도 똥값인데, 빚만 늘어가고 있다”고 푸념할 것이다.

나락금이 똥값이라지만 요즘 돌아가는 세상사도 다 똥값만도 못하다.

불·탈법과 편법의 오물내가 진동하는 국무총리·장관내정자들이 줄줄이 낙마하고 현대판 음서제도처럼 술수를 부려가며 자기자식을 벼슬길에 올렸다가 전세계의 치욕을 산 외교장관, 그리고 지금도 가슴졸이며 살고 있는 똑같은 부류의 가면을 쓴 목민관들도 마찬가지다.

중앙정치는 어떤가. 같은 당에서도 패거리문화가 판을 치고, 정국은 요동치고, 국가의 신뢰는 바닥에 떨어지고, 국민들은 우왕좌왕, 그것은 똥금이 아닌가.

산중의 중인들 내면의 오욕칠정과의 싸움으로 저토록 지쳐있는데 정글이든 인간세상이든, 갈등과 이견이 없을 수 있으랴만, 풍요를 앞세운 평화를 빌미로 우리사회의 전쟁은 차라리 비린내가 역겹다.

“ 허옇게 드러나고 있는 쌀독을 보면서 이 여름을 어떻게 날까 걱정하던 차 이른 새벽 교회 현관에 쌀 한가마니와 계란 세판이 놓여 있었다. 누가 가져다 놓았을까? 산간벽지 가난한 교회 식구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내려주신 그 은혜에 눈물이 핑 돈다”

시골 폐가를 손보아 십자가를 세운 가난한 한 전도사가 농촌 이웃들의 따뜻한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며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 삶은 고단하지만 행복한 것”이라고. 풍성한 추석을 앞두고 우리 사회에도 피부색만큼이나 새까맣게 탄 `고향`의 고단함을 풀어줄 가을 햇쌀같은 희망이 있기를 추석밑에 간절히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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