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먹통 금시계를 오백원 주고 샀다. 금시계는 시간이 정지되고 쓰레기통에 들어가야 할 폐품이었다. 사기꾼에게 오백원을 헌납(?)하지 않았으면 제대하고 입을 작업복 바지라도 하나 고를 수 있을텐데,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빈털터리 졸병에게 사기를 치다니, 인정 사정도 없는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그간 3년 가까운 세월을 군에서 보내고 세상의 물정을 까맣게 모르고 살았는데 사기꾼에게 비싼 수업료를 내고 눈 뜨고도 코 베가는 세상을 다시 깨우치게 되었다. 군 복무를 하면서 남의 동전 한 잎도 안 떼먹고 제대를 했지만 내가 푼돈을 빌려 주었다가 그냥 헌납(?)한 사례는 더러 있었다. 그 사람이 제대 후 사기꾼이 되지 않고 제대로 살아야 하는데 제 버릇 게 못줄까봐 걱정이 된다. 나도 본의 아니게 남의 돈을 갚지 못한 것이 2건이 있다.
지금까지 채권자(?)의 소재를 알지 못해 갚지를 못했으니 내게 푼돈을 받을 주인공이 아직까지 살아 있다면 꼭 연락이 있으시기 바란다.
첫번째 이야기는 1948년의 이야기다. 그때 나는 점촌의 호서남국교 1학년이었는데 사교적이어서 여러 친구와 왕래가 많았다. 그 중에 김기성이란 친구는 점촌 안마에 살았는데 오두막집에서 아버지가 튀밥과자를 만들어 팔았다. 그 친구 집에서 튀밥과자를 100원어치(요새돈 환산) 외상으로 사먹었는데 추석 때 돈을 얻어서 갚기로 했다. 그런데 추석을 며칠 앞두고 기성이네는 소식도 없이 먼곳으로 이사를 가버렸다. 그래서 추석 때 100원은 마련됐지만 외상값을 갚을 수가 없어 나는 국민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100원을 갚지 못해 `숙명의 부채자`가 되고 말았다. 키가 나보다 작고 얼굴이 검고 얽었던 기성이 100원의 빚을 갚지 못해 기성이는 내게 영원히 잊지 못할 친구가 되었다.
두번 째 이야기는 1971년 문경중학교 교사로 있을 때 시골에 사는 시인 김시종을 잊지 않고 수필 원고청탁을 해주었는데 원고료를 선불해 주었다.
원고료를 받고 내가 수필원고를 보냈지만 게재가 되지 않았다. 차일피일 하다가 원고료를 환불 못해 드렸는데 뒤에 알아보니 내게 원고청탁을 해준 `여성동아` 김모 기자는 도미하여 아메리카에서 꿈을 펼친다고 하는데 김 기자의 성공여부를 떠나 본의는 아니지만 원고료를 횡령(!)한 걸, 백 배 사죄하고 환불을 원하시면 백배 배상은 조금 힘들고 흔쾌한 마음으로 십 배 배상을 해드릴 각오다.
하기야 가난했던 내가 입신(立身)을 한데는 물적으로 보다 심적으로 도와준 마음의 은인이야 수도 못 헬 정도다. 빚지고 사는게 인생이라지만 앞서 김기성 친구와 여성동아 김 기자님께는 참으로 미안한 마음이다. 기성이와 김 기자님의 만수무강을 빌어 마음의 빚을 갚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