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명 / 시인
발레는 인간의 몸으로 표현하는 가장 자유롭고 가볍고 우아한 춤이다. 나는 우연히 포스텍 대강당에서 열린 한국예술종합학교 협동과정이 주관하는 발레공연을 본적이 있다. 그때 2009년 6월 열린 모스크바 국제발레 콩쿠르 주니어 부문에 입상한 김기민, 채지영 등 11명의 무용수가 그려주는 그림같이 우아한 발레를 만났다. 그때 이들을 데리고 온 김선희 감독의 농담이 생각난다.

“발레는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춤이다. 프랑스에서 러시아로 러시아에서 전성기를 구가하던 발레가 한국으로 이제 옮겨와서 전성기를 맞았다” 라는 것이다. 그날 본격적인 발레를 처음 본 나로서는 행운이기도 했지만 넋이 나가서 한참동안 자리를 못 떠났던 기억이다. “인간의 동작 중에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하는 것이 나의 탄성이었다.

발레는 우리에게 아직 낯설고 귀족적인 춤으로 이해된다. 그 자태의 아름다움으로 소박한 어린이 발레를 주변에서 자주 만 날 수 있으나 성인발레는 매우 희귀하다. 더구나 지방 중소도시에서 발레를 구경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 같은 일이다. 그런데 이 별 따기가 이번달 28일 토요일 오후에는 가능해졌다. 경상북도 학생문화회관에서 발레로는 세계적인 스타인 강수진의 갈라쇼가 열릴 예정인 것이다.

강수진은 6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9살부터 발레를 시작해 82년 모나코 왕립발레학교에 입학했다. 1985년 스위스 로잔 발레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로 그랑프리를, 1986년에는 그때까지의 발레리나로는 최연소로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입단했고 1996년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수석무용수에 등극했으며 1999년 브누아 드 라 당스(발레의 아카데미상)를 수상한다. 2007년 독일 `캄머탠저린`(궁중무용가) 칭호를 수여받았다. 이 내용 만으로 봐도 그녀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발레리나이다.

발레는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에서 시작돼 태양왕으로 불리던 프랑스 루이 14세에 의해 더욱 발전되고 체계화됐다. 루이 14세는 공연장과 발레학교를 후원해 세우기도 했지만 자신이 직접 출연해 춤을 추기도 했다. 루이 14세의 경우에서 보듯 발레는 처음에는 남성의 예술이었다. 그러나 점차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면서 남성의 힘찬 도약보다 여성들의 요정처럼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춤에 대중들은 매료되기 시작했다. 발끝으로 꼿꼿이 서는 기법이나 잠자리 날개 같이 아름다운 발레의상 튀튀를 입고 도약하는 발레리나의 아름다움은 발레가 여성의 전유물이 되도록 만들었다. 백년이 넘게 대중들에게 사랑받아온 `백조의 호수`나 `호두까기 인형`에서 발레리나들은 환상적이고도 화려하고 우아한 자태를 보여준다.

낭만주의가 시들해지며 유럽의 발레가 쇠퇴기에 접어들면서 러시아 황실은 유럽의 무용가들을 러시아로 불러들였다. 이때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가 러시아에서 발레의 전성기를 만들어내는 주역이 된다. 그가 오늘까지 사랑받는 `백조의 호수`, `지젤` 등을 안무해 만들었다. 그의 작품들에서 우리는 가냘픈 다리로 발끝을 세우고 서 있는 발레리나를 만날 수 있다. 이때 발레리나는 땅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 떠다닌다고 해야 옳다. 발레리나의 걸음은 한눈에 봐도 우아하다. 상체를 꼿꼿하게 세우고 걷는 모습에서 기품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우아한 발레리나에게 매우 가혹한 것이 있다. 그녀들이 땅에만 내려오면 어기적어기적 팔자걸음을 걷는다는 것이다. 또한 항상 다리를 많이 사용하고 까치발을 하느라 근육이 긴장되어 알통이 밴 사람들이 적지 않다. 또한 까치발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발이 되어 버린다. 또한 평평한 가슴도 여자로서는 치명적이다. 이 모든 가혹함에도 불구하고 물집과 티눈 투성이의 발위에 토슈즈를 신고 다시 날아오른다. 연습 또 연습으로 이루어지는 도약 이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땅으로부터의 자유함과 수직상승의 꿈을 대리 실현하게 해준다. 인간이 저렇게 땅을 떠나 공중에 떠다닐 수 있다니 우리는 감탄과 그 아름답고 우아한 자태에 박수갈채를 보낸다. 그때마다 발레리나는 그 마법의 날개인 발을 곧추세우고 우리에게 한껏 그 날개를 퍼덕이며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새가 된다.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