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명/시인
제주 올레길을 개척한 서명숙씨는 `오랫동안 뜬구름을 잡으려 바쁘게 살아온 삶을 내려놓고 걷기를 통해 자신을 다시 찾게 되었다`는 고백을 한다. 그녀는 2007년 사단법인 제주올레를 만들었다. 현재까지 올레길은 17코스 290Km 에 달한다. 제주 올레길은 전국에 걷기 열풍을 만들고 저마다 아름다운 길을 만들게 하였다. 이제 관에서 조차 걷기를 권장하고 길을 조성해서 관광 상품화하기에 까지 이르렀다.

국토해양부가 올해 들어 `해안 누리길` 52곳을 찾아 선정한 것이다. 경북에는 4곳 포항 호미곶 새천년길과 영덕 고래불 명사이십리, 울진 관동팔경길, 울릉도 해남 해안산책로 가 선정되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아름다운 해안풍경은 돌아보면 어디에나 있다. 포항만 해도 오도해안의 그 맑은 길이나 흥환리에서 일몰을 바라다보면서 걷는 길은 새천년길 못지않다. 그러나 선정에 의해 차별화되고 나면 떨어져버리는 가치 이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상품화란 그 상품의 가치를 차별화된 다른 무엇인 것처럼 느끼게 만들면서 시작되는데, 어째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행복한 최면에 걸려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정신 차리고 차가운 눈으로 분별하면 모를까, 남자들이 아름다운 여인에게 마음이 자꾸만 휘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아파트는 짓는 것이 아니라 나무처럼 심는 것입니다`라고 하면 그냥 최면에 걸려들어 푸른 숲속에 지어진 아파트를 상상하고 `철은 소리 없이 세상을 만듦니다`라고 하면 정말 그렇게 생각하게 되어버리는 이런 상품화 전략들은 모두 상상력의 생산물들이다. 에스키모인에게 냉장고를 팔고, 스님에게 빗을 팔고, 맨발로 다니는 아프리카인에게 신발을 파는 상상력, 아무짝에 쓸모없는 돌을 팔고, 아무 가치 없는 다이아몬드 원석을 팔며, 공기와 물도 팔아치우는 상품화의 상상력은 이제 그 한계를 알 수 없을 정도다. 사람들의 걷기를 이용하여 길을 상품화하다니 기발하기 까지 하다.

이런 상품화에는 어두운 면이 있겠지만 그래도 밝은 면도 많다. 옛날에는 알지도 못했던 제주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되었잖은가. 그것만 해도 충분한데 또 마을과 마을을 연결해주는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을 연결해주는 문인 `올레`라는 말과 그 정신을 알게 해 준 가르침도 있다. 제주의 조랑말인 간세의 모양을 본떠 만든 안내판을 따라 가다보면 걷기의 즐거움이 한층 증폭된다. 이런 아름다움에 대한 향유와 깨달음과 몸의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상품화라면 언제라도 환영이다. 그러나 상품화 때문에 지워져버리고 감추어져버리는 이면의 아름다움과 환경오염과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상처들, 욕심을 증폭시켜 결국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상생보다는 일부 사람들의 잇속만 챙기게 되는 것 등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걷기는 사람의 행위 중 가장 원시적인 것이다. 걷기를 통해 인생은 자유하며, 걷기를 통해 사유하면서 살아간다. 걷기는 정신을 낳고, 걷기는 문학을 낳는다. 톨스토이가 그랬고, 프루스트가 그랬고, 칸트가 그랬다.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은 그가 산책하면서 얻은 대표적 명시이다.

`나는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고 끝맺는 이 시는 인생의 갈림길에 망설여 보았던 사람들이 절실하게 공감하는 시이다. 프루스트의 또 하나의 명시 `눈 내리는 밤 숲가에 멈춰 서서`도 인생의 어둡고 아득한 밤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야할 의무감을 서늘하게 그려 주고 있다. 영문을 우리말로 번역하다 보니 그 아름다운 어감들이 많이 사라졌지만 그 사유의 긴장과 감정의 질서를 회복케하는 내용은 그대로 전달된다. 마지막 행 영문은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이다.

이렇게 걷기에서 얻은 멋진 시들을 봐도 걷기에서는 건질 것이 많다. 풍경들, 온갖 이야기들, 깨달음, 정감 있는 사람들, 온갖 자질구레한 예쁜 것들에 대한 앎, 빠른 차창으로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정감들이 무수히 많다. 이 아름다운 걷기 열풍이 상품화나 온갖 인생들의 때 묻힘으로 쉽게 식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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