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화된 동탁의 문양·모양·용도
흥해 옥성리 철탁과 제작기술 연관

경북매일신문 창간 20주년 특별기획 `연오랑 세오녀 원류 추적` 조사단이 이즈모지역 일대에서 발굴된 유적지와 출토 유물·박물관 등을 현지 조사한 결과, △고진다니 유적 △가모이와쿠라 유적 △ 이즈모 야요이모리 박물관과 서곡분묘군 △이노메 동굴유적 등에서 연오랑 세오녀와의 역사적인 연결 고리를 찾아볼 수 있었다. 

삼국유사에서처럼 연오랑 세오녀가 일본에 제철기술을 전한 최초의 실존 인물이라면, `고진다니 유적`에서 한꺼번에 358점이 출토된 동검(청동검)과 `가모이와쿠라 유적`의 동탁(청동 방울)은 선진 제철기술을 전수받아 일본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이즈모 풍토기에 황천의 혈로 전해지는 `아노메 동굴유적`은 연오랑 세오녀 신화의 `신화`라는 부분만 빼면 그 당시 포항에서 누군가가 해류를 타고 이즈모에 왔을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앞으로 한·일 양국은 각종 사료와 유적 등을 서로 비교 검토한 후에 고대사 관계를 밝혀 나가야 할 과제이자 몫이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프롤로그
경북동해안지역의 소국
일본속에 숨쉬는 역사적 진실⑵
`신화의 고향` 이즈모의 유적들
문화전파의 바닷길 있었나
에필로그

이즈모 고진다니(荒神谷)유적

고진다니 유적은 1984년 도로를 개설하려다가 동검이 발견돼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2곳의 유구에서 유물이 수습된 곳이다.

한 곳은 구덩이를 파고 전체적으로 가로로 4줄로 맞추어서 동검(청동검)을 상하가 교차되게 옆으로 눕혀서 매장된 곳으로, 동검의 길이는 50cm 정도이고 형태는 비파형이며 모두 358점이 부장되어 있었다. 일본 연구자들이 동검을 재질 분석한 결과를 보면 357점은 중국산의 납(10개 정도는 조선산과 혼합), 1점은 조선산의 납이 검출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 다른 옆의 구덩이에서는 동모 16점, 동탁 6점이 있었다.

유물 중 동검 자루에 X자가 새겨진 344점은 같은 시대에 한 장소에서 한 장인이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동검은 야요이시대로 편년되고 있는데 동검이 어느 곳에서 만들어졌으며 재료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그리고 유적의 성격은 무엇인지 등은 의문으로 남아 있다.

일본 학자들은 동검이 어떤 경위로 이곳에 묻혔는지는 모르지만, 이 일대의 세력가가 수장한 위세품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유적 성격도 밝히지는 못했지만, 제사유적이나 퇴장유적(退藏遺蹟·세력 자가 돈이나 중요품을 땅에 묻어 둔 유적)정도로 보고 있다. 출토된 동검은 1987년 일본 국보로 지정돼 현재 이즈모 현립 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유적 근처에 세워진 고진다니 박물관에는 복제품만 있다.

고진다니 유적의 유물이 동검이고 그 시기가 야요이시대에 해당함으로 연오랑 세오녀와의 연관성도 생각해 볼 수는 있다. 즉 연오랑이 제철유적을 일본에 전한 최초의 인물이라면, 그 당시 한국에서 표본으로 가져간 동검을 중심으로 현지에서 제작한 동검을 이곳에 매장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현지의 고진다니 유적 설명자는 일본에서 동검과 동모는 한 군 데서 제작되거나 매장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곳에 부장된 동검과 동모의 매장집단은 달랐다는 가정이 성립하고, 연오랑보다 후에 일본으로 건너간 세오녀가 동모를 가져간 것은 아닐까. 그렇지만 일본 학자들은 동검 358점의 재질분석결과, 중국산이 대부분인 점을 들어서 중국과의 관련설을 내놓고 있다. 이와 같은 점은 앞으로 한·중·일간의 유적과 유물의 꼼꼼한 비교가 있은 후에야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서곡 3호분 철검, 연오랑신화 시기 연관

지역 목곽묘서 출토된 형태·크기 비슷

이즈모 가모이와쿠라(加茂岩倉)유적

유적은 平成 8年(1997) 10월 불도저로 해발 138m의 능선사면을 깎아서 농로를 내다가 큰 동탁(청동 방울)이 발견된 곳이다. 유적은 좁고 긴 계곡 안쪽에 햇볕이 잘 드는 남향의 구릉중턱에 자리를 잡고 있다.

발굴조사 당시 39점의 동탁이 수습됨으로써 일본 내 단위유적에서는 최다의 동탁이 나와 1998년 10월 16일 국가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동탁의 길이는 짧은 것은 30cm 큰 것은 45~51cm로 손잡이에 장식이 있는 것과 없는 것, 궐수(고사리)문양을 본떠서 새긴 것 등 모양이 다양하다. 표면에 새긴 문양도 격자로 구획하고 그 내부에 잠자리, 사슴, 멧돼지, 바다거북, 사람 얼굴 등 다양한 문양을 새기고 있다. 동탁 외부에는 방형의 구멍도 뚫었고, 안쪽에 설(舌·소리를 내기 위해 내부에 다는 막대기)을 상부에 고정하여 소리를 내고 있다.

가모이와쿠라 유적도 고진다니 유적 동검과 마찬가지로 동검의 손잡이 부분에 X자를 새기고 있어서, 고진다니 부장품과 무관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동탁의 모양이나 문양·용도는 일본화된 것이지만, 한반도의 연오랑과 세오녀와 연결할 수 있는 부분은 흥해 옥성리 등에서 출토된 철탁(쇠로 된 방울)의 제작기술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즉 한반도에서 철을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을 때 일본에 제작기술이 전해지면서 동탁이 등장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지만 일본의 동탁은 한반도에서 전해진 철탁에서 무슨 이유로 제사에 사용될 만큼 큰 동탁으로 변했는지 또 문양은 왜 변하게 되었는지 등의 문제점은 추후 연구과제로 남는다.

이즈모 야요이모리(彌生の森)박물관 및 서곡분묘군(西谷墳墓群)

서곡분묘군의 발굴조사 자료와 유물, 야요이시대부터 대진정(大津町)일대 유물을 전시하면서 지난 4월29일 개관한 시립 박물관으로 야요이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물을 전시하고 하다.

서곡분묘군은 모리 박물관 맞은편에 있는 서곡능선 위의 고분군으로 현재 5기가 발굴조사 후 복원되어 있으며 1999년 11월 19일 국가사적으로 지정하였다.

능선 위의 고분은 일본 야요이 후기 유적으로, 능선을 깎아서 밑바닥 부분을 네모 반듯한 모양으로 만들고, 동서남북의 네 방위가 돌출되도록 한 사우돌출형분구묘(四隅突出形墳丘墓)이다. 또 분구 주위에는 배수구를 설치하여 제사유물을 넣기도 했다. 분구 자락과 분구 아랫부분에는 냇돌과 깬 돌을 섞어서 붙여 둔 상태이다. 유구는 분구의 상부에 합장으로 매장시설을 마련하고 있다. 분구 규모는 9호의 경우, 밑바닥 부분이 동서 42m, 남북 35m이고, 높이가 4.5m인 대형분이다.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 가운데 연오랑 세오녀 신화와 시기적으로 연관성을 찾아볼 수 있는 유물도 있다. 전시 유물 가운데 서곡 3호분에서 출토된 철검은 경주와 포항 인근의 목관, 목곽묘에서 출토된 것과 형태나 크기 등이 비슷한 점이 많다. 하지만 서곡 분구묘처럼 능선을 깎아서 조성한 사우돌출형분구는 한반도에서는 흔하지 않은 사례라서 숙제로 남는다. 따라서 이 시기의 한반도의 목관,목곽묘의 구조 및 그 후에 나타나는 분구묘에 대한 재검토가 있어야 역사적인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즈모 이노메(猪目)동굴 유적

이즈모시 북서쪽 해안 응회암 절벽에 동쪽으로 입구를 조성한 동굴유적으로 이즈모 풍토기에는 황천(黃泉)의 혈(穴)로 전해지고 있다. 소화 23년(1948년) 동굴 입구를 선착장으로 만들기 위해 입구의 퇴적층을 제거하다가 발굴조사된 유적이다. 1975년`이노메 동굴유적 포함층`으로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동굴유적에서 조몬(繩文)시대 중기 토기 조각 몇 점과 미세한 돌조각과 돌덩이(石塊) 등이 섞인 퇴적층에서 인골이 수습되었다. 인골은 13개체 이상으로 굴장(掘葬), 신전장(伸展葬 · 시신을 펴서 매장)을 하고 있으며, 그 곁에서 조개로 만든 팔찌와 목기, 조개류, 새와 물고기 뼈, 볍씨, 해조류, 노(·화덕)의 흔적과 목탄 등이 함께 수습되었다.

특이한 것은 조개로 만든 팔찌, 야요이(彌生)시대, 고분시대 인골 등이 다양하게 매장된 점, 생활유물인 각종 목제품, 토기, 골각기 등의 도구와 식료라고 생각되는 조개류, 짐승, 새, 물고기 뼈 등과 나무열매와 다량의 석회(회·灰)가 출토된 점 등이다. 또 동굴은 선사인들이 거주하던 바위 은거지형(Rock-shelter)을 하고 있으며, 내부공간은 폭과 길이가 각각 30m 정도이다. 유적은 매장된 유물로 볼 때는 야요이시대 이후 고분(古墳)시대 후기에 해당한다. 또 유적 주변 해안가에서는 한반도에서 흘러간 쓰레기가 발견되는데 이것은 2~3월경 대마 난류를 타고 한반도에서 흘러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렇다면 야요이시대 때도 한반도 사람들이 배를 타고 이 동굴유적 근처에 도착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과 인골을 자세히 검토한다면 연오랑 세오녀와 관련된 자료를 발견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즈모시에서 장정남 한빛문화재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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