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기찬대구취재본부장
1970년대 초반 복싱 선수였던 필자의 선배는 그 당시 “돼지국밥 한 그릇 먹으면 평소 30분간 하던 스파링을 한 시간 씩 했다”는 말을 반찬이 없어 밥을 못 먹겠다고 투정하던 선배의 아들에게 항상 주지시키던 생각이 난다. 당시 선배는 복싱을 하면 집에서는 못 먹는 간식(빵)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복싱을 시작했고, 훈련도중 어쩌다 프로로 전향한 선수와의 스파링이 있을 때면 체육관 관장이 꼭 돼지국밥을 한 그릇 사 줘 그날은 호강하는 날이었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해댔다. 관장의 의도는 돼지국밥 먹고 스파링 잘하라는 것이다. 밥도 못 먹고 스파링을 했다가는 프로선수들에게 1라운드도 못 넘기기 때문이다. 지난 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 여자육상 중·장거리 800m 와 1500m서 우승한 모 선수도 라면을 먹으며 배고프게 훈련했다고 회고 했듯이 당시는 하루 세끼 다 먹고 운동하는 선수들이 드물었던 만큼 윤택한 생활이 못됐다.

이러한 시절에 비해 요즘 사람들을 보면 매사에 불만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옛날처럼 밥 못 먹어서 자식을 딴 집에 수양자식으로 안 보내도 되고 어디에 가고 싶으면 빠르고 편히 갈 수 있다. 또 가전제품이 워낙 발달해 힘들여 집안일 할 필요도 없고 시장이나 마트에 가지 않고 컴퓨터로 주문하고 구입해 사용하고 물건이 싫으면 집에서 반품하는 것을 보면 세상이 많이 좋아졌음을 알 수 있다.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 하얀 쌀밥에 고기반찬과 갖은 영양식 반찬으로 정성껏 차려주지만, 입맛이 없다고 수저를 내려놓는다. 어머니는 속마음으로 `세상 좋아졌구나`라고 중얼거리지만, 자식을 나무라지도 못한다. 현실이다.

40여 년 전과 현실을 비교하면 요즘 우리 국민들은 너무 행복하다. 물론 우리 국민 모두가 노력한 결과로 경제가 발전하고 나라가 부강해져 행복을 누리고 있지만, 그 당시와는 너무 비교가 되는 신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1966년 6월25일 장충체육관에서는 김기수 선수가 이탈리아의 니노 벤베누티에게 이기면서 챔피언 벨트를 차지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특명으로 챔피언 만들기 프로젝트를 가동해 대전료 5만 5천달러를 정부에서 보증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치러진 이날 대회에서 2대1 판정승은 사실 개운치 않은 결과였다. 이 타이틀전은 TV(흑백)와 라디오에서 동시에 중계됐으나 당시 TV가 제대로 보급되질 않아 대부분 라디오 중계에 귀 기울이며 김기수의 타이틀 획득을 알게 됐다. 실제 라디오도 웬만한 집에서는 없었던 것이 그 당시 실정이다.

당시 국내 복싱팬들은 김기수 선수가 벤베누티에게 많이 때리고 그냥 승리하는데 만족했지만, 현재는 다르다. 요즘 국민들은 언론매체를 통해 축구와 야구, 농구 등 모든 스포츠 종목 국가대표 선수들의 기량, 상대팀의 전력을 파악하고 전문 해설가를 동원(?)해 대형 컬러 TV 스크린을 통해 관람한다. 최근에는 3D 입체영향 시스템까지 동원됐다. 40년 전보다 엄청난 좋은 조건에서 스포츠를 즐긴다. 세상이 그만큼 좋아진 것이다. 그런데 지난 남아공월드컵 예선 두 번째 경기를 지켜본 일부 팬들은 불만이 많았다. 이유는 단순히 국가대표팀을 응원하고 아끼는 팬이 아니라 감독 이상(?) 이었다. 왜 경기를 그렇게 풀어가느냐, 왜 그 선수를 기용했느냐, 어느 선수는 왜 기용하지 않느냐는 등 패인에 대한 불만 투성이었다. 이 극성팬들은 좋아진 세상 덕분에 축구국가대표선수 개개인의 기량을 어느 정도 알았고 선수들을 믿었기 때문에 그만큼 실망도 컸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축구 수준이 40여 년 전에 비하면 엄청나게 성장했고 아르헨티나전에서 비록 패했지만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축구를 사랑하는 팬들은 독설보다는 격려의 한마디가 필요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나라의 수준이 어느정도라는 것을 팬들은 지켜봤을 것이다. 훌 륭한 성과(16강)다. 그러나 일부 극성 팬들이 이러한 결과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불만을 표시하는 것은 먹고사는 데 걱정없이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좋은 세상,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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