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고사 시험기간이다. 사위가 쥐죽은 듯 고요하다. 베란다에서 내려다본 아파트 단지 내 버스정류장에도 한낮의 적요만이 감돈다. 주말이면 간편 복장에다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시내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던 학생들 모습은 간 데가 없다. 지금 저들은 저마다 열공(?)의 동굴 하나 파서 들어앉은 게 분명하다.

중3인 아들녀석도 예외는 아니다. 오롯이 주말을 시험공부 모드로 바꾸긴 한 것 같은데, 몸과 맘이 영 따로 논다. 십 분이 멀다하고 의자 뒤로 물리는 소리를 내더니 냉동실 문 열기에 바쁘다. 목이 탄다며 한입 가득 얼음을 털어 넣다 못해 숫제 냉장고로 들어갈 기세다. 유독 열 많고 땀 많은 체질이라 요즘 같은 여름이면 하루에 속옷을 두세 벌씩 적셔내긴 하지만, 이건 체질 문제라고 이해해주기엔 무리가 있다. 공부에 집중할 맘이 없는 것 말고는 달리 설명이 안 된다.

공부 잘 한다고 평판이 난 학생들의 엄마들이 전해주는 얘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 학생들의 공통적인 학습태도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었다. 자기절제, 자기주도, 자기확신이 그것이다. 그 학모들이 들려주는 얘기에 아들녀석을 대입시켜보면 맘에 차는 구석이 하나도 없다.

자기절제 부분부터 보자. 주말 오락프로그램을 본다 치자. 자기절제심이 강한 그들은 스스로가 정한 시청 시간을 철저하게 지킨단다. 애처로워 보여 다 보고 공부해도 된다고 엄마가 권해도 좀체 흔들리지 않는단다. 정말로 그럴까 싶어 신기하고 부럽기만 하다. 아들녀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일박이일`을 다 보고도 엉덩이가 무거워 도무지 일어나지 못하는 유형이기 때문이다. 십 분만 더 보고 일어난다고 약속한 것이 한 시간이 되기 일쑤다. 자기절제 같은 고상한 트레이닝은 너무 멀리 가 있다.

그 다음, 자기주도 학습 태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그런 태도를 제대로 심어주지 못한 건 엄마인 내 탓이 크다. 녀석이 중학생이 된 뒤에도 나는 없는 시간을 짜내서라도 공부하는 아들 옆에서 빨간색연필을 들고 있었다. 요령부득인 아들을 도와주고 싶었다는 핑계가 있었지만 그것보단 엄마로서의 욕심이 앞섰으리라. 일이년 매달려 같이 용쓰다 보니 내가 먼저 제 풀에 나가떨어지게 생겼다. 체력, 지력 다 한계를 느낀 상태에서 어느 날 문득, 이게 뭔 짓인가 싶어 자괴감만 일었다. 공부 모범생 학모들의 얘기를 듣고 보니 나야말로 녀석의 자기주도적 학습을 망친 주범이 아닌가. 진짜 공부하는 아이들은 스스로 자기만의 스타일과 방법을 터득한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그게 온전한 방식이고 백 번 옳다. 하지만 아직도 완전히 적응하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엄마로서의 내가 보인다. 천하태평, 낙천적인 녀석의 방식 옆에서 아직도 안절부절못하고, 초조해하는 것은 엄마인 내 몫이다. 그래도 색연필 들고 동그라미와 사선 긋기를 열심히 해대던 시간을 벗어난 것만 해도 여간 다행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자기확신(자기욕심)이야말로 공부 모범생의 지름길이란다. 과외를 해야 하지 않을까, 무슨 과목이 부족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엄마에게 공부 모범생들은 `걱정하지 말고 일단 믿어보라`고 확신을 준단다. 자신의 역량을 알고 나아갈 길에 대한 기대치가 있으니 그걸 자신감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것이다. 하지만 아들녀석은 한 번도 스스로 뭘 해보겠다고 욕심을 내지도, 꼭 뭔가를 이뤄야겠다고 확신을 내비치지도 않는다. 그저 십 분이 멀다하고 냉장고 문만 열어젖힌다. 각 얼음을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는가 싶으면 공부 다 했다고 책을 접고 나온다. 세 시간을 꼼짝 않고 앉아 있어도 삼십 분처럼 느껴진다는 공부 모범생의 길은 정녕 멀고 험난하기만 하다. 지켜보며 속 타는 엄마야말로 각얼음이 필요할 지경이다. 열불 돋은 나도 아들 몰래 얼음조각을 집어 든다. 얼음 한 입 물고 냉정을 되찾는 일이야말로 모범엄마를 향한 지름길이겠지만 그런 현명한 결론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얼음은 너무 차고, 현실은 여전히 후텁지근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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