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가방 하나 들고

오늘도 만나야 할 사람들을 챙긴다

사람 앞에 서서

말을 잃어버렸다

가슴의 말을 잃어버렸다

눈웃음치는 탈 하나 얼굴에 얹고

그의 머릿속을 열심히 읽으며

그의 표정 따라 내 말도 흘러가고

늦은 밤, 소주 한 잔 걸치고

대문 앞에 서면

전등불 속 환히 드러난

텅 빈 껍데기 허수아비 하나

`어둠의 축복`(2008)

먹고 살기 위해 세상으로 나가는 모습과 상처받고 지친 모습으로 귀가하는 모습이 시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이 시는 사람을 수레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의 포로로 설정하고 있다. 제목인 도시의 허수아비 라는 말은 위선과 기만이 가득 찬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시대 모든 이들의 슬픈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시인의 시정신에 깊이 공감되는 작품이다.

<시인>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