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돌아오니 어머님과 형님은 집이 파괴되어 새 집을 짓고 있었으며, 나는 어지러운 사회질서를 바로잡고자 경찰에 입문하여 치안경비를 담당했다.

유엔경찰부대 본부로부터 후퇴명령이 하달되어 폴리스 가족증을 발급받아 기차역에 가니 피난길 난민들로 가득차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벌써 객실은 만원이고 서로 비집어 승차하려는 사람들이 아우성을 친다.

기차지붕에도 빼곡히 들어박힌 피난민들을 보니 위험천만이다.

새벽 3시경 간신히 서울에 도착, 이북에서 피난 온 치안대 및 경찰대원들은 남산에 위치한 경찰학교 운동장에 집결하여 학교장의 피난시 행동강령에 대한 훈시를 듣고나니 대다수의 사람을 사라지고 혈기왕성한 젊은 청년들만 남아 인천부두까지 야간행군으로 걸어갔다.

인천부두에서 미군상륙정인 L·C·D선에 승선, 서해바다 한 복판에서 그물사다리를 이용하여 미군 수송함으로 옮겨 타고 남쪽으로 항진했다.

1950년 12월29일 06시경 부산부두에 도착, 임시 육군 제2훈련소에 입소하여 7일간 약식 전투훈련을 받고 대구육군본부로 이동 재편하는 제2사단에 편입되어 낙동강 전투 패잔병을 소탕하고 경상북도 일원 공비토벌작전에 들어갔다.

팔공산을 위시하여 영천, 군위, 의성, 안동 등 시가지와 산악지역으로 종횡 무진했다.

나는 육군2사단 32연대 3대대 11중대에 편성, 작전임무를 수행하는데 괴뢰군 연대규모병력이 북진루트를 타고 군위군 부근으로 접근 중이라는 정보가 입수되어 3대대는 군위군으로 이동하였다. 11중대는 군위군 의흥면 소재 까치산으로 급파되어 지형지물을 이용, 산병호와 진지를 구축 매복에 들어갔다.

잠시 후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하늘엔 먹구름이 끼더니 바가 내린다.

한참동안 내리던 비는 멈추고 구름사이로 달빛이 새어나온다.

전우들의 얼굴이 달빛에 비쳐 환하게 보이는데 야간위장을 한 얼굴이 빗물에 젖어 벗겨져 다시 진흙을 손으로 주어 얼굴에 바른다.

그러는 동안 또다시 구름이 달빛을 가려 밤하늘은 어두워진다.

잠시 후 전초진지에서 사격신호탄이 불을 뿜으며 하늘로 솟아오르더니 맹렬히 총을 발사한다. 순식간에 온 산이 총소리로 진동하며 여기저기서 비명과 고함, 암호소리 등 피아간 식별이 어려워 혼동범벅이 되어 지휘계통이 무너져 아수라장이다.

피아간에 우군을 알아보려고 암호를 대고 수화를 하는 순간 죽음뿐이다.

피아간의 암호가 모두 밝혀졌기 때문에 암호를 바르게 되는 상대가 적이다.

아군의 암호는 <김치 - 깍두기>고 괴뢰군의 암호는 <기동 - 부대>였다.

언어, 말소리, 음성도 똑 같다. 그 당시 이북출신 피난장정들의 수가 2개 군단 정도 되었다. 앞뒤로 양옆에 있는 컴컴한 그림자를 식별하고자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보았다는 전우도 많았다. 언어로도 식별이 불가하고 암호! 암호! 수화를 걸면 대답 대신 총탄이 날아와 비명과 동시에 쓰러져 죽는다.

이러하다 보니 서로가 부동자세로 날이 밝기만을 기다린다. 움직이면 죽음뿐이다.

새벽이 가까워지자 산 아래 중대본부로 집결하기 위해 적과 아군이 혼합된 상태로 하산하다가 동이 틀 무렵 서로가 알아보고 순간적으로 맞붙어 격투를 벌인다.

전우 `김수남` 하사는 PR 사수로 PR자동화기의 멜빵을 목에 걸고 앞에 총을 하고 내려오다 괴뢰군 장교와 마주쳐 싸우고 있었다.

괴뢰군 장교는 두 손으로 PR총을 가로 쥐어 당기고 `김수남` 하사는 총구가 앞을 향하지 않아 발사도 못하고 발로 차고 머리로 박고 한데 엉겨 붙어 산 아래로 뒹굴어 천수답 물구덩이 논에 처박혀 누가 누군지 식별조차 불가한 상태로 사투를 벌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