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매일신문은 6·25 전쟁 60주년을 맞아 지역 출신 이완석 노병의 전쟁회고록을 연재합니다.

연재물은 경주보훈지청 김주용씨가 참전국가유공자로 상이를 입고 보훈수혜를 받고 있는 `이완석`의 회고록을 3여년에 걸쳐 집필한 것을 토대로 합니다.

<편집자주>

내 나이 어엿 82세, 일제시대 때 일본군과 싸웠고 고향 황해도에서 공산주의와 싸웠으며 6·25사변 때는 국군으로 참전 북괴군과 싸웠다.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마감하기 전에 나의 심장에 고동치는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자라나는 세대에게 알리고 먼저 간 전우들의 명복을 빌면서 수많은 전투에서 사선을 넘나들며 생과사의 갈림길을 회상하니 눈물이 글을 쓰는 노트 위에 뚝뚝 떨어진다.

나는 나라 잃은 서러움이 뼈에 사무치고 자유민주주의를 끝까지 지켜야겠다는 사명감으로 오로지 조국을 위해 싸웠으며, 대한민국에 청춘을 바친 영광의 상흔을 되새겨본다.

이제 내가 불구의 몸에 독거노인이 되었음에도 지금까지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것은 전쟁의 생생한 장면을 전후세대들에게 알려주고 세상을 하직하라는 하나님의 계시이자 나의 마지막 소원임을 밝혀둔다.

1.일본군 중대병력을 섬멸시키다

1926년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읍 구천리 479번지에서 태어나 1940년 7월 사리원상업중학교 4학년 중퇴하고 형님 따라 중국 만주로 이주하여 왜놈들의 가혹한 세파에 시달리고 갖은 풍파와 싸우면서 하루하루를 지냈다.

당시 일본은 일반주민들에게 악랄하기 그지없는 마적 때를 포섭하여 조국독립을 위해 활약하는 애국지사들을 체포하는데 이용하는 등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고 있을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나를 공산주의 신봉자로 몰아세워 취조하는 일본경찰을 때려눕히고 달아났다.

요주의 인물로 지목되어 도피생활을 하던 중 하얼빈행 열차 속에서 일본경찰 심문에 걸려들어 강제로 일본 구주후꾸오카(九州福岡)로 압송, 수용소의 철저한 감시 속에서 수내정신 교육을 받았다.

한편, 남태평양 전쟁이 가열되니 만주에 있는 대련주둔 관동군사령부 예하 대부분 병력을 남태평양 전장으로 내몰아 만주일대에 북방군사방어는 미미한 실정에 놓이게 되었다. 이런 사정에 나는 수내정신 교육을 못 받겠다고 반항하면 죽음뿐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열렬히 복종하는 자세를 보이니 일본 경도(京都)소재 육군사관학교에 입학시켜주었다. 평소 왜놈들의 학대에 복수심이 불탔으며,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 가야한다`는 격언과 같이 이를 악물고 고된 특별사관후보생 군사교육훈련 등을 3년 6개월에 걸쳐 무사히 마치고 일본육군 군조계급(한국의 중사)을 달고 관동군사령부 소속 소만국경 흑룡강 지주 흑하 기마부대로 배속 발령받아 3개월 근무 후 육군소위로 임관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