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기찬 / 대구취재본부장
`당신은 왜 산에 갑니까?`1924년 최초로 에베레스트산을 정복한 말로리(George Mallory)가 원정을 떠나기 전 필라델피아의 한 강연에서 어느 기자가 질문한 내용이다. 이에 말로리는 `Because it is there(산이 거기 있어 산에 오른다.)`라는 불멸의 명언을 남겼다. 어떤 산악인은 `나는 버리기 위해 걷고 걷기 위해 산에 간다`. `걷기 위한 곳으로 산(山)만한 곳이 어디에 있겠는가?`라고 표현했다. 이 표현은 산에 가면 손상되지 않은 물상(物象)이 온전히 있어 마음이 고요를 찾아 많은 것들이 바르게 보이기 때문에 산에 오른다는 것이다.

산악인과 낚시인을 비유하는 것은 아니지만, 산악인이 산에 가는 이유가 있다면 낚시인도 물가에 가는 이유가 있다. 낚시인은 낚시터를 물색하고 어렵게 선택한 낚시터에서 죽을 고생을 하고서도`피곤하지만 상쾌해진 심신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물가에 간다`고 한다. 붕어가 물을 떠나서 살아갈 수 없듯이, 낚시인은 물을 완전히 떠난 자신을 상상하기가 끔찍할 것이다. 산악인에게 산이 없다고 가정하면 이 같은 끔찍한 기분은 같은 맥락일 것이다.

낚시를 가리켜 예로부터`명상하는 사람의 레크리에이션` 또는 `기다리는 예술`이라 했다. 또 미지의 낚시터를 상상하며 준비하는 과정이 그렇게도 즐거울 수는 없다고 한다. 이 또한 산악인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해외원정에서 돌아온 산악인들은 또 다음에 도전할 고봉을 물색하고 장비를 보수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되풀이된다. 준비하고 기다리는 과정이 그만큼 즐겁기 때문이다.

낚시를 `명상하는 사람의 레크리에이션` 또는 `기다리는 예술`이라고 한 표현은 최근 낚시인구가 급격히 늘어나 레저스포츠로 각광받으면서 자연과 더불어 건강도 챙기고 낚싯대를 편성하고 언제 올지 모르는 입질을 기다리는 과정과 낚시하는 순간만큼은 바쁜 것도 없이 그저 세월을 낚는다는 뜻이다.

최근 낚시 전문가들에 의해 개발된 중층낚시, 내림 낚시 등의 낚시기법이 유행하고 있다. 이러한 기법들도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고 마릿수에서는 대세다. 그러나 민물낚시의 전통기법인 대물 바닥낚시가 중층낚시와 내림 낚시 보다는 여러 가지 면에서 멋이 있다. 이유는 중층과 내림이 마릿수 위주라면 대물 바닥 낚시는 현지에 도착해 포인트를 선택하고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수초 작업 후 수심을 체크하고 대를 편성한다. 이어 현지에 서식하는 새우나 참붕어 등의 동물성 미끼를 채집해 대물 붕어를 유혹한다. 밤 낚시를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나고 어둠이 깔리면 지루한 밤의 여정이 시작된다. 포인트 곳곳에 떠있는 캐미라이트 불빛과 밤하늘에 총총히 박혀있는 별들과의 속삭임속에 중후한 찌올림을 기다린다. 이 모두가 대물 붕어를 만나기 위한 정성이며 과정이다.

대물 바닥낚시는 하룻밤 낚시에서 한두 번 입질을 보거나 전혀 입질이 없어도 다음을 기약하는 낚시다. 그리고 밤새 입질이 없어도 붕어나 낚시터를 원망하지 않으며 운 좋게 월척을 하더라도 손맛만 보고는 놓아 주는 미덕도 있다. 이러한 대물 낚시인들에 대해 광(狂)이라 하여 미쳤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낚시에 잘 길들여진 꾼에게는 어이없게도 아무렇지 않다. 이유는 남들이 낚시에 미쳤다며 쓴소리 할 때, 꾼은 오히려 의미 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흐뭇해한다. 이는 꾼만이 느끼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꾼들은 한결같이 풍이 세다. 4짜(40cm 이상)를 걸어 터졌다느니, 하루 저녁 월척 다섯 마리를 잡았다. 바늘에 100원짜리 동전만 한 비늘이 걸려 나왔다는 등의 사실확인도 안 되는 영양가 없는 이야기들을 꾼들은 서슴없이 늘어놓는다. 꾼들은 어디서 낚시 얘기가 나오는 순간 이미 그는 물가에 서 있고, 벌써 낚시소설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끝없는 무용담을 지칠 줄 모르고 열변을 토한다. 꾼들의 이야기가 그냥 듣기에도 풍인 줄 알지만 그래도 순수한 면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풍은 남들에게 해를 주지도 않을뿐더러 듣는이의 귀를 즐겁게 해주니까. 오늘도 또 다른 풍의 소재를 만들기 위해 낚시꾼은 물가로 간다. 가는 이유는 피곤하지만 상쾌해진 심신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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