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도 자리를 비운 적 없는
안면 주름살이 복잡한 나이 먹은 거지였다
삼복더위 여름 한철 어느 날엔가
사흘씩이나 거지가 눈에 띄지 않았다
자리를 비웠어도 빈자리가 아닌 듯
그 사흘 동안 양평인가 덕평 쪽으로
식구들과 함께 피서 다녀왔다는
앞에 빈 소쿠리를 만지작거리며
꼬깃꼬깃한 삶을, 손금을 손바닥에 펴 보이며
씨익 웃고 있던 검게 탄 맨얼굴
내 마음에 빗금을 긋던 그 망설이던 길목에
`상계동 11월 은행나무`(2006)
지하도에서 동냥하는 거지가 3일간 여름휴가를 다녀왔다는 사실을 말하는 시인과 이 시를 읽는 독자들의 마음에 약간의 혼란스러움이 일었을지 모른다. 시인이 짊어지고 왔던 사회적 소외계층에 대한 일종의 부채의식 혹은 시혜의식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삶을 살아가는 이웃의 일환임을 알려주는 이 시는 다분히 해학적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