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은 허공이 바다라는 걸 말하기 위하여 갖은 재롱을 부린다 먹구름은 바다가 간만의 차가 심한 사리 때의 파도이다 새털구름은 잔잔한 조금 때의 파도이다 그 바다에는 밀림보다도 빽빽한 생명의 주소록이 있다 선운사는 그것을 지상으로 옮겨놓은 허공의 약도이다 동백숲은 저 높이서도 밀물과 썰물의 눈에 쉽사리 띄도록 떼지어 청등 홍등을 번갈아 켜는 허공의 부표이다 허공은 하루에도 몇 차례 선운사에 내려와서는 지상의 기색을 살핀다 그 흔한 춘란 한 포기도 허공의 걸작이다.

`고맙다는 말을 못했다`(2006)

구름과 파도, 선운사 동백숲이라는 각각의 공간과 사물이 밀접하고 유기적으로 연관되며, 우주의 생명원리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인간의 시공간 속에도 이러한 구조는 많다. 그러나 거기에는 갈등과 아픔과 상처가 내재되어 있기 마련이다. 이 시는 우주, 자연의 생명원리나 조화로운 어울림에 대한 시인의 인식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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