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여자는 비둘기들이

똥을 싸놓은 월남 이상재 선생 동상 앞에서

맨발로 머리를 빗고 있다

순찰 중인 전경이 뭐라고 주의를 준다

그러나 그녀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마친내 전경은 호루라기를 빽, 하고

불어댄다. 호루라기 소리에

비둘기들이 일제히 튀어오른다

하지만 잠자는 천사는 꺼덕도 하지 않고

천천히 거닐고 있는 늙은 천사들 역시

아무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시의 일부분 인용)

`그 후, 일테면 후일담` (2005)

서울의 종묘 공원에 모여 있는 이 천사들은 우리 시대가 만들어 놓은 노숙자들이다. 비둘기들과 어울린 그 모습들이 평화롭기 짝이 없다. 그런데 그 평화는, 곧 겨울이 올 것이고 전경(戰警)들이 간섭하고 귀찮게 할 것이 뻔한 불안하고 위태로운 평화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고 무관심으로 참견하지 않는 현대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쓸쓸한 소외의 현장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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