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와 나, 아들 이렇게 3대가 영화를 하게 됐는데 자부심을 느낍니다. 한국영화 100년을 우리 집안이 지켜왔다고 할 수 있죠.”

1970~80년대 강한 남성상을 보여준 배우 김희라(63)의 영화인으로서의 자부심은 남다르다.

그의 아버지는 `마부`(1961) 등에 출연했던 1950년대 인기배우 고(故) 김승호(1918~1968), 아들 김기주(31)는 영화 제작과 연기 입문을 앞두고 있다.

3대가 영화를 하는 보기 드문 집안인 셈이다.

김희라는 최근 인터뷰에서 “가수를 하던 아들이 마부엔터테인먼트라는 영화사를 이달중에 차린다.

아들은 주로 영화 제작을 하면서 연기도 한다. 아들과 함께 독립영화도 촬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기 할아버지와 생각하는 것까지 똑같다. 노래도 작사, 작곡까지 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면서 아들의 재능에 대해 자랑스러워했다.

1990년대 이후 그의 삶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떨어지고 사업에 실패했으며 뇌경색으로 쓰러져 장기간 투병생활을 하기도 했다.

말을 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상태가 호전돼 2006년에는 `사생결단`에 출연했으며 올해는 칸 국제영화제에 진출한 이창동 감독의 `시`에서 주인공 미자(윤정희)의 간병을 받는 노인 역을 맡아 다시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부인 김수연씨는 “평소 이창동 감독과 영화를 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이 감독의 조감독이 찾아왔다. 조감독이 비디오카메라를 갖고 왔는데 거기다 대고 `나를 안 쓰면 촬영장 가서 괴롭힐 거다`고 했다”고 귀띔했다.

김희라는 “`시`에서는 감독이 하라고 했을 뿐”이라면서 “감독이 다 알아서 했다. 옛날에도 그랬지만 `작품은 감독 것`이라는 말이 요즘 세상엔 더 실감이 난다”고 말했다.

그가 배우가 된 것은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초상 치를 때 임권택 감독이 오셔서 나에게 영화를 하라고 하셨죠. 어머니는 저보고 배우를 하라고 하셨어요. 나중에 생각하니 배우를 해야 먹고 살 수 있으니 시킨 것 같아요. 아버지가 영화를 제작하시다 부도가 나서 돌아가셨으니 집도 빼앗기고 길거리에 나앉았을 때였어요.”

김희라는 임권택 감독의 `비나리는 고모령`(1969)을 시작으로 영화에 데뷔, 이제까지 찍은 영화가 500편 가량이라고 말했다.

`독짓는 늙은이`(1969),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1971), `상록수`(1978), `병태와 영자`(1979), `미워도 다시 한번`(1980), `짝코`(1980), `꼬방동네 사람들`(1982) 등의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1970년대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할 때였다. 1년에 30~40편을 했는데 하루에도 영화사 서너 군데를 돌아다니면서 바쁘게 찍었다”고 회고했다.

김희라는 요즘 배우들이 연기를 잘 한다고 칭찬하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예전엔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몸으로 뛰었는데 요즘은 감독이나 배우, 스태프 모두 게을러요. 요즘엔 너무 기계를 이용할 뿐 직접 움직일 줄 몰라요. 인기 오르면 돈 버는데 먼저 신경을 쓰는데 그래서는 진짜 예술이 나오기 힘들죠.”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