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명 / 시인
조금은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사람을 돈으로 살 수 있을까? 나는 서슴없이 그렇다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돈의 노예가 되어 살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런 셈이다.

P시의 모기업 사장은 나이가 들어서 가업을 물려줄 계획을 세우고 둘째 아들을 지명하여 사장으로 세웠다. 그 이유는 첫째보다는 아무래도 둘째가 `돈을 잘 쓰는 것 같다`는 이유에서라고 소문이 돌았다. 둘째는 몇 일 동안 실무를 배우고 회사의 경영을 익히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낙하산으로 내려온지라 아랫사람들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정보를 차단하고 뒤에서 숙덕거리기 일쑤였다. 그중에서도 소위 S대 출신에 회사업무에 뛰어난 비서실장이 그들 중 가장 속으로 탐탁지 않게 자신을 바라보는 눈치였다. 이 회사의 비서실장은 실무에 뛰어날 뿐 만 아니라 회사의 모든 경영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었다.

하루는 신임 사장은 비서실장을 불렀다. 그리고 오늘저녁 시간을 내어달라고 정중히 요청하고 시내의 고급식당에서 기다렸다. 그곳에서 비서실장을 만난 사장은 식사 후에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을 도와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봉투를 한 장 깊이 찔러주는 것이 아닌가. 비서실장은 어떨떨해서 봉투 안을 보지도 못하고 집에 와서 열어보았는데, 수표인데다 영자가 무려 몇 개인지 쉽게 셀 수도 없었다. 생각의 범위를 넘어가는 엄청난 돈이었다. 물론 다음 날 부터 비서실장은 사장의 충성파로 바뀐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다.

사람은 돈으로 살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몇 만원만 주면 나를 위해 하루 종일 열심히 봉사해줄 사람구하는 것은 쉽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니 너무 적나라해서 비참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그것이 사실인 걸 어떡하나.

그런데 이런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사실을 거스르는 위대한 사람들도 가끔 나오기 마련이다.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이 돌아가신 날은 2007년 5월17일이다. 군위의 시골에 살면서 아이들의 꿈을 키워줄 글을 지어낸 선생의 일화는 모두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데가 있다.

당시에 `느낌표`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책을 소개하고 있었으며 매우 강력한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유명한 프로그램이었다.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 똥`이란 작품에 대하여 `느낌표`담당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선생에게 느낌표 권장도서로 선택된 것을 축하한다는 말을 전했다. 그때 선생은 대뜸 화를 내면서 `아이들의 책 선택권마저 빼앗아가 버리는 프로그램에 내 책이 나가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고 거절해버렸다. 당시 느낌표 권장도서가 되면 10만부 100만부이상은 팔려나가기 예사였고 출판사나 저자로서도 엄청난 돈을 만질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선생은 그런 돈에 팔리지 않았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선생에게 가장 소중했던 것은 돈보다 어린이들의 맑은 동심으로 선택하는 자유였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깝다. 아마 `느낌표`담당자도 그 전화를 받고 아연실색했을 것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있다니. 그런 것을 보여준 선생이야 말로 우리시대에 보석처럼 빛나는 존재였다. 돌아가시면서도 모든 판권으로 얻어 수익금을 전액 북한에서 기아로 허덕이는 아이들을 위해 쓰라고 유언했다니 말이다.

당신은 얼마짜리인가? 얼마를 주면 팔리겠는가? 한번쯤 돌아보며 생각해보면 유익할 것 같다. 자존심을 팔고라도 돈을 벌고 돈을 모으는 것이 자본주의아래 살아가는 인생들의 모습이라면 새로 도래한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더욱 돈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지역경제중심에서 세계경제 중심으로 변하고 모든 시장은 개방되고 전 세계 금융은 서로서로 물고 물리며 거대한 시장을 형성해가고 있다. 이런 시대에 돈에 팔리지 않는 사람이 존재할 공간은 어디인가? 시간이 지나갈수록 좁아들어 가고 있다. 시장에서 외따로 떨어져 나와 자급자족하는 사람만이 자존심을 지키고 돈에 자신을 지킬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모두 근본주의자들처럼 시장을 버리고 문명을 버리고 살아가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바쁜 걸음을 멈추고 한번 생각해보자는 말이다. 당신을 시장에 판다면 당신은 얼마짜리인가?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