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어떤 야유회나 현장체험학습에서 노래를 부르는 경우가 생겨도 동요가 잘 나오지 않는다. 차 안에서 노래를 불려보아도 교과서 노래나 동요는 하찮은 취급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청소년의 우상인 젊은 가수들의 밝고 가벼운 노래가 쉽게 나온다. 주로 사랑을 주제로 한 것으로 랩 형식의 빠른 가사가 나오고 연예인을 흉내 낸 춤까지 등장하여야 박수를 받는다.

만약 이 때 교과서에 나오는 노래나 동요를 부르다면 분위기는 금방 흩어지게 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어린이들이 동요를 기피하고 영상매체에 등장하는 연예인을 흉내 내야 박수를 받게 된다는 것은 무엇이 잘못되어도 많이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어릴 때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면서 불러본 동요나 명곡이야말로 바로 마음에 끼인 먼지나 오염된 더러움을 씻어내는 청량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부인 할 수 없는 일이다.

어릴 때 배운 운동 기능이나 머릿속에 자리한 지식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구기운동이나 철봉 등의 기계체조는 물론이고 외워둔 사회의 연도도 평생을 간다. 교과서에 나와 외워둔 동시나 익힌 동요는 어른이 되어도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국어 교과서에는 한 학기에 5편 내외의 동시가 나온다.

그러나 요사이는 그 시의 간단한 감상 정도로 넘어가 아쉬운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관련 작품을 찾아 감상을 하고, 교과서의 시를 암송하여 내 것으로 만들어 보는 것이 필요한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자녀가 그것을 학습할 무렵이 되어 가족이 다 모인 가운데 어머니가 교과서에 대한 시와 관련된 이야기를 먼저 꺼내보는 것은 어떨까?

“야, 우리 아들아! 너의 교과서에 좋은 시가 나오지?”

“엄마가 어떻게 알아요?”

“교과서에 나오는 시는 다 그 정도의 값어치가 있는 좋은 시거든?”

“좋은 시요?”

“그래서 엄마도 외울 수 있단다.”

“엄마가….”

“잘 들어보렴. `감자. 이문구. 씨앗은 여물어야/ 싹이 트는데/ 감자는 반 쪽씩/ 잘라 심어도/ 씨눈마다 굵은 싹이/ 솟아오르고/ 어둡게 자랐어도/ 사이가 좋아/ 캘 때는/ 온 식구가/ 따라 나온다.` 어쩌니?”

“엄마가 어떻게 우리 교과서의 시를 다 외울 수 있어요?”

자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리고는 가족들이 그 시의 느낌과 생각을 같이 나누어 보는 것이다. 경험을 들려주는 것이다. 학교 다닐 때 시를 즐겨 썼고 한 때는 꿈이 글을 쓰는 작가나 시인이었다면 엄마를 바라보는 자녀의 마음은 얼마나 촉촉이 젖어들지 짐작이 가지 않겠는가.

감정을 넣어서 시를 외우는 어머니를 자녀는 놀람의 눈빛으로 바라볼 것이다. 어머니를 새롭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는 어머니도 외우는 시를 자기도 한 번 외우겠다는 생각으로 노력할 것은 뻔한 일이다.

이런 자녀는 시를 좋아하게 되고 시에 대한 친근감으로 시와 친구가 되어 좋은 시를 써보려고 노력할 것이다. 자녀 국어 교과서를 한 번 살펴보고 좋은 동시를 한 편 먼저 외워서 자녀 교육에 도움이 된다면 그 얼마나 값어치 있는 일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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