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한 마리 뒤집혀져 있다

바닥을 기던 여섯 개의 다리는

낯선 허공을 휘젓고 있다

벌레는 누운 채 이제 닿지 않는

짚어지지도 않는 이 새로운 바닥과 놀고 있다

다리들은 구부렸다 폈다 하며

제각기 다른 그림을 그린다

그는 허공의 포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허공의 만삭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거기에 그림을 그린다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2004)

뒤집힌 벌레의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며 시인은 새로운 인식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를테면 뒤집혀서 낯선 허공을 끝없이 휘젓는 벌레의 절망감보다는 뒤집힌 상태에서 누운 채 새로운 바닥과 놀고 있다라고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처한 새로운 처지나 환경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즐기고, 혹은 그 주체가 되어 자기 삶의 방향을 잡아가는 의미있는 발상이고 인식이 아닐 수 없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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