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가지 끝에 빨간 홍시 한 알

푸른 하늘에서 마른번개를 맞고 있다

새들이 다닌 길은 금세 지워지고

눈부신 적멸(寂滅)만이 바다보다 깊다

저런 기다림은 옥양목 빛이다

칼빛 오래 삭혀 눈물이 되고

고요 깊이 가라앉아 이슬이 될 때

묵언으로 빚은 등불

꽃눈 틔운다

두이레 강아지 눈 뜨듯

이 차갑고 명징한 여백 앞에서는

천사들도 목덜미에 소름이 돋는다

`경향잡지` 2009년 12월호

감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그림 속으로 우리를 끌어들인 시인은 풍경의 여백을 이루고 있는 고요와 적멸의 경지를 가만히 내밀고 있다. 사실 우리는 엄청난 소란과 시끄러움 속에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너무 많은 말을 하고 듣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굳이 가부좌를 틀고 참선에 들지 않는다손 치더라도 말없이 자기 자신을 들여다 봄 직 하지 않는가. 사람과 사물을 가만히 바라보는 묵언의 시간들을 가져봄 직하지 않는가. 시인이 말하는 묵언으로 빚은 등불 꽃눈이 터질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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