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주의자였던 아버지 평생 농사꾼으로 산다

논과 밭과 한 몸으로 연민할 것을

사랑할 줄 아는 아버지의 연대

쌀 보리 밀 콩 감자 고구마를 위하여

일흔, 하고도 네 해 동안 보급 길 걸어왔다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땅속에 낙원이 들어앉길 바라진 않았지만

똥막대기보다 못한 농사가 뭐 그리 대단해

페농의 논과 밭 밟지 않고

사월과 오월 사이

거침없이 자운영 꽃 자청한 검붉은 울음

아직도 토해내는 것인가

새파랗게 빛나는 농사는 어디에도 없는데,

`시평` 2009년 여름호

농사 지어 자식들 공부시키고 사람다운 삶을 살아보겠다는 농민들의 소박하고 절실한 꿈이 깨어진지 오래됐다. 농사 지어 제 입에 풀칠이나 하며 산다는 소위 `식량주의자`로 살아가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쓴 이 시에는 우울한 그림자가 깔려있다. `식량주의자` `보급길` 같은 시어들이 품고 있는 가슴 아픈 의미를 새기며 이 시를 읽다보면 우리의 농촌현실이 훤히 들여보 보일 것이다. 아직도 이 땅 도처에는 이런 불구의 농촌현장들이 즐비하다. 안타까운 일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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