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신객원 논설위원·문화중고 동창회장
KBS 주말 인기드라마 `명가`는 경주 최부자집 얘기다. 이 드라마에 등장되는 무대는 비록 세트장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전통 한옥이다.

한옥은 우리 삶의 둥지이자 미래의 집이다. 버선코 모양처럼 살짝 올라간 처마 끝 부연은 멋의 극치다. 한 치의 과장이 없는 절제요 3대가 한집안 살림을 할 수 있을 편리함이 묻어나는 공간이다.

1970년 화재로 불탄 경주 최부자집 사랑채나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등 유명 사찰에 쓰인 목재를 보면 한옥이 시멘트 집보다 오래가는 이유가 극명하다.

경주 최부자집 사랑채에 쓰인 목재는 소나무다. 금강송이라 하더라도 그냥 쓰면 비바람을 맞아 오래가지 못한다. 고택의 재목 겉은 그을음을 맞은 것처럼 늘 연한 검은 색이 돈다.

옛날 대목들은 산에서 운반해 온 소나무를 그늘에 말리고 불에 살짝 태워 송진이 몸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비바람에 쉽게 노출되는 대들보 등은 이런 과정을 거쳐 다듬어지니 5백년 풍상을 겪고서도 고고한 품격을 자랑한다.

불에 살짝 굽는 순간 송진으로 속이 채워지니 벌레가 침투할 수 없고 세찬 빗줄기는 겉에서 흘러내리니 썩을 리가 없다.

지붕을 덮는 기와는 더 특이하다. 서까래에 찰흙을 덮고 기와를 이었는데 그 사이에 대나무를 넣어 휘저을 공간이 있다. 한옥이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는 보온이 잘되는 비결이다.

경주 최 부잣집 사랑채 36평은 지난 2006년 5억3천만 원을 들여 원래 모습으로 다시 지었다. 하지만 요즘 짓는 한옥들은 옛 대목들이 했던 것처럼 정성이 들어가지는 않는 것 같다.

전통 한옥 촌 배치는 더 멋있다. 마당이 들여다보일 토담 사이 샛길로 들어서면 ㄱ, ㄷ 자 모양으로 집과 집의 경계를 긋고 있어 거추장스러움이란 한곳도 없다.

아무리 높아도 이 층 범주를 넘지 않는다. 물길이 굽이쳐 휘돌아 나가는 안쪽 터, 조금 높은 곳에 남향으로 짓고 자연 속에 집이 들어서 있어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ㄱ자 골기와 집, 18형이면 큰집이다. 요즘 짓는 개량 한옥은 온돌과 주방, 대청을 효율성 있게 배치, 20여명이 모여 식사할 수 있고 수납공간이 여기저기 나와 활용하기가 그저 그만이다.

천정을 떠받치는 질박한 서까래나 황토벽, 한지에서 풍기는 맛·색이 모두 우리 고유의 것이고 주변에서 쉽게 구하는 친환경 재료들이다.

프랑스의 작가 발레리 줄레조는 그의 저서`아파트 공화국`에서 “서울은 아파트 때문에 하루살이 도시다”라고 적었다. 우리나라는 서울 지방 도시할 것 없이 옛것을 헐고 아파트로 대체하는 게 유행이다.

청태낀 골기와 집이라면 유럽이나 일본 부럽지 않게 많았었다. 허물고 높게 높게 짓는 것을 좋아하는 개발 지상주의가 이렇게 만들었다.

가까운 일본의 온천지역은 어딜 가던 100년 된 집은 쉽게 볼 수 있는가 하면 아끼다(秋田)에서는 3백년 된 여관에서 온천을 즐기면서 묵을 수 있다.

로마나 베니스에 가도 꼬불꼬불한 골목길에 그 나라 전통건축양식을 살린 고옥(古屋)들을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유럽은 도시마다 고유한 멋을 불어넣는 고옥들을 우리처럼 마구잡이로 헐거나 뜯어고칠 수 없게 국가가 법으로 엄하게 규제하고 있고 시민도 함부로 허물지 않고 지키려는 시민정신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한옥은 영남에 많이 남아 있다. 전국 고택의 절반 이상이 경상도에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경상도에서도 안동과 경주 예천 영덕 봉화 등에 더 많이 보존돼 있다.

이들 지역이 물산이 풍부했던 지역도 아닌데 좋은 골기와 집들이 많이 남아 있는 원인은 가문과 가풍을 중시하는 퇴계 학풍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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