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광순 / 제2사회부
설 다음날인 지난 15일, 1년 전 각막을 기증하고 선종한 고 김수환 추기경의 흔적을 취재하기 위해 안동시 어느 외곽지에서 권모(74)옹을 만났다.

처음엔 평범한 손님으로 가장했던 기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신분이 곧 드러나 권 옹의 아들들에게 휴대폰과 사진기를 빼앗기는 등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권 옹과 그의 가족들은 언론 노출을 극히 꺼리며 거듭된 인터뷰 요청을 한사코 거절했다.

하지만 `명절 후에 찾아온 손님은 거지라도 문전박대를 안 한다`는 옛말만 믿은 기자의 설득에 비로소 권 옹은 소박한 음식과 함께 조심스레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자랑거리라고…. 아무 조건 없이 주신 그분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가슴이 아픕니다”

인터뷰 도중 김수환 추기경을 언급할 때마다 권 옹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 곧 쏟아져 내릴 듯 보여 오히려 설 분위기를 망칠 것 같아 내심 불안했다.

“평생 종교 없이 살았지만 올해부턴 성당을 다녀볼까 합니다. 김 추기경께서 저에게 주셨듯이 저도 나눔으로 남은 여생을 살고 싶습니다”

이식받은 권 옹의 왼쪽 눈은 마치 생전 김 추기경의 인자하고 천진무구한 모습 그대로였다. 그의 성품 또한 김 추기경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지요. 돌아가시면서 얼굴조차 모르는 촌로에게 큰 선물을 주셨으니…”

2시간 여 인터뷰 내내 권 옹은 김 추기경에 대해 `감사`란 말을 수 없이 반복했다. 기자는 목적을 달성했지만 한편으론 자칫 이번 보도가 국민의 알 권리보다 소박한 삶을 사는 권 옹의 사생활을 깊게 침해할까 내심 염려됐다. 인터뷰를 마치자 대문 밖까지 배웅해준 권 옹과 아들들께 지면을 통해 다시 한번 신분을 감추고 궂은 질문을 한 무례함을 정중히 사과드린다.

돌아가는 기자를 몇번이나 바라보며 집으로 들어간 한 촌로의 모습에서 김수환 추기경의 고귀한 흔적을 보며 그에 대한 기억을 다시 한번 되살려본 의미 있는 취재였다.

안동/gskwo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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