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가 길을 떠난다. 그 길이 어긋난 길일 수도 있고, 갈림길의 중간에 서서 심각한 고민을 할 때도 있으며, 시기적절하게 때아닌 길을 걸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떠한 사람이든 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쉬운 길을 놓고 어려운 길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만약 어렵거나 허락되지 않은 길을 걸어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여기 꿈 많던 여고 시절을 대구에서 보내고 당시로써는 쉽지 않은 군인의 길을 택했던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군인의 길을 택하며 당시로써는 쉽지 않은 일선 부대의 부대장과 여군 최초의 여군단장을 역임한 사람이 있다. 김옥이 의원은 “여중시절과 여고시절에 주변을 보면 군부대와 함께 커왔기 때문에 어찌 보면 일종의 운명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했지만, 그 결정이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임은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1947년 대구 출신의 김옥이(비례대표) 의원은 달성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의 경북대 병원 자리에 있던 대구여중과 대구여고를 졸업했다. 이후,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군대에 투신, 육군 제15대 여군단장을 역임하고 육군 대령으로 예편했다. 경기도의회 의원을 지냈으며 재향 여성군인협의회 회장과 한나라당 중앙위원회 여성위원장을 맡으면서 정계 및 박근혜 전 대표와 인연을 맺은 친박근혜계 인사로 분류된다. 현재, 군 시절의 경험을 살려 국방위원회와 여성위원회에 소속되어 있으며 독도영토수호대책특별위원회, 인권위원회, 북한 핵 도발대책특별위원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편집자주>

-어린 시절의 김옥이에 대해 얘기해주시겠습니까.

달성초등학교는 역사가 깊은 학교입니다. 삼촌도 동창입니다. 비산동에 성당이 있었는데, 그때 수녀님이 고깔모자를 씌우고 삼촌은 늘 자전거에 저를 태워 다녔습니다. 사실 제 입으로 말하기는 쑥스럽지만 초등학교 때는 성실했다. 6년 개근상을 받았으며 이후 대구여중과 대구여고를 다녔습니다.

이때의 습관이 국회에서도 적용되는지 이번에 출석률이 높은 본회의 참여 우수 의원으로 선정된 것 같네요. 국회의원으로서 의무를 지키는 상을 받는데, 솔직히 국감 우수 의원보다는 본회의 참여 우수 의원이 보람있는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구여고는 핸드볼을 잘했습니다. 전국에서 2등도 하는 등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국으로 응원을 많이 하러 다닌 기억이 있습니다.

-여고 시절에는 불교회도 하는 등 불교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입니다만.

그때는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친한 친구가 6명인데 모두 불교학생회를 하며 수업 중에 반야심경을 외우기도 했죠. 그때 친구들이 반야월의 큰 과수원집 딸도 있고, 삼덕동에 사는 친구도 있었으며, 쌍용그룹 딸도 있었는데 모두 같이 했어요. 그런데 지금 불교는 저 혼자밖에 없네요. 우리 집은 사촌들도 모두 동국대 불교대를 나왔으며 지금은 대승원이라고 대처승입니다.

조언을 하자면, 우리네 어머니와 할머니들이 믿었던 것이 불교라면, 이제는 불교가 그들을 키운 우리 어머니들을 안아야 한다고 봅니다. 사회복지시설을 통해 대중을 보듬어야 할 것 같아요.

-여성으로서 군대라는 곳에 가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대구여중과 여고 시절을 돌이켜보면, 학교 근처에는 경북 도지사의 관사와 경북대학교 병원, 그리고 그 옆에는 2군 사령부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군인들을 가까이서 보게 됐어요.

어떻게 보면 나는 군대에 갈 수밖에 없었지 않나 합니다. 어릴 때, 유관순이라는 영화를 보고 울었던 적이 있다. 사실 그때는 군대라는 곳을 생각이나 했겠어요?

재미있는 게, 저는 우리 동기생 중에서도 군대 생활을 제일 오래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찍 전역한 사람은 결혼하면 아이를 낳았다는 연락이 오곤 하는데, “3월 1일부로 아이를 낳았다”는 식으로 보고를 하더라구요. 나는 사실 지금도 운동장이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아요. 연병장이라는 말이 더 쉽죠. 또 집앞에 경비소를 위병소라고 하는 등 한참을 놀림받았습니다.

-스스로가 생각하는 여군이란 무엇인가요.

저는 지난 50년부터 있었던 여성군인의 병과, 즉 성 개념의 병과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대학과 같은 병과를 집어넣었습니다.

예를 들어, 식품영양학과는 병참분과, 의학자원들은 의학분과 등이죠.

저는 소대장과 중대장, 그리고 대대장을 거치며 군이라는 조직이 어떤 면에서는 남녀가 평등한, 그리고 계급에 상응하는 예우나 봉급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요즘에는 군을 일종의 직업적으로 많이 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다만, 군이라는 조직이 개인의 희생과 봉사를 하는 만큼 우리 사회가 군에 다녀온 사람을 끝까지 책임지는 보온정책이 깊게 반영되어야 합니다.

사실 김영삼 정부 시절부터 문민정부라는 미명하에 군인을 소외시키고 도외시켰던 적도 있죠? 고 김대중, 고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더더욱 군인을 폄훼하기도 했습니다.

군은 더 발전해야 하고, 군인들의 사기와 복지를 위해서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보며 젊은이가 2년을 군대에 다녀오면 고작 몇만 원을 쥐여주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이런 면에서 여성이 많아야 합니다. 여성이 군에 많이 들어가야 합니다. 여군이 생김으로써 많은 부분이 깨끗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회통합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봅니다.

-군대에서 재미난 일이 있다면요?

사실 재미라기보다는 저는 즐기면서 군 생활을 했습니다. 지휘관을 했기 때문에 부대원들을 잘 먹여야 했고, 재우고 입히는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죠. 때문에 군생활을 하면서도 저의 첫 관심은 부식 등의 먹을거리였어요. 가끔 정월 대보름에 찰밥을 해줍니다. 부름도 깨고 땅콩이나 밤을 쥐여줍니다.

여군단 본부대장을 했는데 여성 운전병이 드물 때였죠. 그러다 보니 얘네들이 허구한 날 차를 길가에 세우기도 하더라구요. 남자병사들을 한 40명 데리고 있었는데 그들은 우리를 여군이라고 부르고 우리는 남군이라고 부르는데 얼마나 재미있던지요.

-예비군들의 이야기 중에 빠지지 않는 게 검정비닐이라고 합니다만.

저는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6,70년대 우리 아버지들은 적응하고 참고 지냈으며 사회나 병영이나 시설이 비슷했습니다.

때문에 군대생활이 어려워도 참고 지내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군대가 사회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생기는 차이가 병사를 자살로 이끌고 탈영을 해서 범죄자로 만든다는 말입니다.

그 차원에서 요즈음 병사들이 훈련을 다니면서 식사를 해결할 때 쓰는 비닐에 대해서도 지난 국정감사에서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가산점 문제는 심각합니다. 이에 반대하는 여성국회의원들에게 늘 이야기하죠.

“전방에 한번 가보시라. 우리 젊은 아들과 딸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실제로 보시라”고 말입니다. 사실 군 가산점보다 더한 것도 해주고 싶어요.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데, 가산점은 별것 아닙니다.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가 주도하는 동행의 회원으로 알고 있습니다.

강재섭 전 대표가 대구 서구 출신입니다. 그 당시에 나는 한나라당 중앙위원회 여성분과 위원장을 오래했습니다. 그때 강재섭 대표가 20여 년 동안 의정생활을 하면서 중앙위에 관심을 가지고 청년위원장도 역임하고 했습니다.

특히, 제가 살던 곳이 원대동으로 옛날 집도 운동장과 구 방송국 사이에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각종 모임 등에서 인연을 맺었습니다. 강 전 대표가 당 대표를 할 때에도 많은 지지를 했구요. 원래 경상도 사람이 인연을 맺으면 잘 변하지 않지 않나요?

이 인연이 자연스럽게 박근혜 전 대표와 이어졌습니다.

-고향, 대구에 대해서 한 마디 해주십시오.

대구를 보면, 제가 국회의원이 되고 박근혜 전 대표를 수행해 방문하여 보니 많은 부분에서 침체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옛날에 내가 어릴 때 대구는 대한민국의 3대 도시로써 활기차고 수많은 인재가 나왔지만 지금은 도시에서 컴컴한 분위기를 느낍니다.

사실 굉장히 걱정스럽습니다. 대구의 근로자 1인당 봉급을 계산해보니 울산의 4분의 1수준이며 충남의 2분의 1수준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그런 의미에서 세종시는 특혜라고 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사람들에게 세종시 원안을 약속하고 표를 받았습니다. 이는 지켜나가야 합니다. 또 왜 이런 혜택을 수도권만 보아야 하는지, 세계 어느 나라도 2천100만이 모여 사는 수도권은 없습니다. 공주가 4시간 걸리는 거리도 아닌 이상 생각하기 나름이죠.

공무원 한 사람이 가면서 8천 명이 뒤따라간다는 통계가 있는데, 그만큼 공무원의 위치는 중요합니다. 서울 사람들은 다 가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전라도나 대구 사람이 혜택을 보면 안 되는 게 있겠습니까.

/박순원기자 god02@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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