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형광고국장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로 근교에는 돌궐제국을 부흥시킨 명장 톤유쿠크의 비문이 있다. 당시 유목민이 겪었던 눈물겨운 사연들을 구구절절이 기록하면서 장군의 유훈을 새겨놓았다.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 남을 것이다”

장군의 유훈은, 닫힌 사회는 망하고 열린 사회만이 영원하리란, 경계와 벽을 모르고 세상을 누비던 유목민의 수평적 사고가 녹아 있다.

몽골을 찾은 한 여행자가 겔에서 잠을 자다가 소변이 급해졌다.

하지만 겔 바깥에는 사나운 개가 지키고 있어 꼼짝을 못했다. 난처한 몸짓을 보였더니 주인은 두뼘도 안되는 끈 하나를 챙기고선 개의 한쪽 다리의 무릎을 접더니만 끈으로 칭칭 감아 개를 절름발이로 만들었다.

정착민의 방식이 개의 목에 끈을 매 활동공간을 제한해 구속하는 것이라면 유목민은 시간(개의 속도)을 구속해 개의 활동력을 약화시키는 방식이었다.

아이를 키울 때도 같은 방식이었다. 우리는 아이를 업어 키우지만 유목민들은 아이의 두발을 명주실로 살짝 묶어놓는다. 아이가 하루종일 걸어도 말을 타고 30분이면 찾아올 수 있는 거리밖에 갈 수 없기 때문이다.

2010년의 새해는 21세기의 시작이란 의미가 있다. 끊임없이 이동하고 능란한 정보와 속도를 통해 접속하고 소통하는 몽골 유목민의 사고가 더 없이 필요한 글로벌 세상이다. 반면, 농경정착민들의 우선 관심대상은 경작할 토지와 비를 내려줄 하늘이다. 외부와의 교류 필요성이 제한적인 만큼 폐쇄적이다.

고인이 된 정주영 회장은 현대건설 회장 당시인 1975년 중역회의에서 “오일달러를 벌기 위해서는 중동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오일쇼크라는 위기에서 기회를 찾으려 했다. 1973년 닥친 1차 오일쇼크로 배럴당 1달러 75센트 하던 원유값이 2년도 안 돼 10달러까지 치솟는다. 한국은 파산 직전의 상황에 직면한다. 현대건설도 울산에 조선소를 지으면서 자금 사정이 악화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시 현대건설 해외담당 중역은 강력하게 반대한다.

“중동은 위험합니다. 지금 중동에는 세계 굴지의 선진 건설사들이 진을 치고 있어 우리가 발붙이기 쉽지 않습니다”라고. 그때만 해도 중동 건설시장에서 수주를 한 한국 건설회사는 대림건설 단 한 곳 뿐이었다.

정 회장은 반대하는 중역에게 “이봐, 해봤어?”라며 중동 진출에 나선다.

우리나라 건설업계가 시작한 중동신화는 정 회장의 도전정신에서 나왔다.

1976년 현대건설은 사우디아라비아 주바일 산업항 공사를 따낸다. 공사 기간(44개월)을 8개월 단축하는 조건이었다. 공사 금액은 9억3천만달러로, 그해 우리나라 예산의 25%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그 뒤 현대건설은 해외에서 각종 대형 공사를 수주하며 `건설명가`의 자리를 굳혀나간다.

이후 유명한 일화가 돼 전해지고 있는 “이봐 해봤어”란 정 회장의 의지는 농경정착민의 사고가 아니었다. 속도를 통한 끊임없는 도전의식이었다. 그의 또다른 일화집의 제목처럼 `결단은 칼처럼 행동은 화살처럼` 하자는 공통의 의지인 것이다. 설날 앞이다. 새해엔 다 소망하는 꿈이 있다. 우리의 꿈은 그러나 지나치게 수직적일 뿐 수평적이지 못하다. 농경정착민의 특성이 강한 혈연중심의 전통적인 꿈이다. 외부와의 꿈의 공유가 없다.

닫힌 공간에서 더더욱 겹겹이 성을 쌓는 농경정착민의 사고를 벗어야 할 때다. 접속하고 소통하는 공동체가 돼야 한다. 가족과 혈연, 마을공동체에서부터 조직과 사회, 국가와 세계에 이르기까지 소통을 위한 길을 닦는 노력이 더없이 필요하다. 새해엔 안분지족의 평화를 소망하되, 원조대경(元朝對鏡)을 통해 자신에 대한 더한 엄격성을 주문하자. 그리고는 내꿈과 네꿈을 구분하지 말고 모두가 꿈을 함께 하는 설날이 되길 소망하자. 한사람이 꿈을 꾸면 꿈으로 끝날 수 있지만 만인이 꿈을 꾸면 현실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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