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인생에 비유된다. 걷는다는 것과 산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닮았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 살아가는 것, 그리고 길을 가는 것, 우리는 인생을 노정(路程)이라고 말한다. 삶과 길을 한가지로 보는 말들이다. 인생은 나그넷길이라고 하지 않던가. 무엇이 있는지 어떤 일이 있을지 알지 못한다. 지나고 난 후 돌아볼 뿐이다. 불가에서는 벗을 도반(道伴)이라고 부르는데 뜻을 살펴보면 의미심장하다.
벗이 누구인가. 그 길을 함께 가는 사람이다. 내가 가는 길과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사람이다. 같은 방향을 보고 그곳으로 향하기에 먼저와 나중에 세속의 순서는 의미가 없다. 길이 있는데 그 길을 가는 이가 하나도 없다면 이 길을 선택한 이가 한 명도 없이 오로지 나 혼자라면 참으로 막막하고 허허로울 것이다. 그러기에 벗은 가족과는 또 다른 든든함으로 삶의 한 축을 지탱한다. 그러기에 좋은 벗을 얻음은 인생의 반을 얻는 것과 같다고 하지 않는가.
`길 없는 길`은 소설가 최인호 선생이 중앙일보에 3년에 걸쳐 연재했고 후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가톨릭 신자인 작가가 한국불교의 대표적 선사인 경허스님과 만공스님의 이야기를 풀어가며 인용했던 경전의 많은 구절과 촌철살인의 경구(經口)는 참으로 신선한 감동이었다. 길 없는 길에서 주인공은 그토록 찾아 헤맸던 것이 그들의 삶의 흔적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과 답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삶의 길 위에서 누구를 만나든, 누구 앞에 있든 결국 상대를 통해 자신을 보고 있음을 말한다. 길은 이어지고 갈라지고 다시 모아진다. 그 위에서 누구를 만나 어떤 인연을 짓든 모든 것은 자신에게서 비롯되어지는 문제임을, 나로부터 시작되어지는 길임을 생각하게 한 작품이다. 얼마 전 한 없이 쏟아지는 눈발을 바라보며 한 편의 시가 떠올랐다. 들판은 눈에 덮여 은세계를 이루었고 경계가 사라진 들판은 어디가 길이고 두렁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함박눈은 그저 하얀 평면의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서산스님은 시야를 가린 저 백색의 세계에서도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는 길을 보았던 것일까.
“踏雪野中去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때에는
不須胡行 모름지기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마라.
今日我行跡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이
遂作後人程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