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 팔다, 접고

순대 썰다, 그마저 접고

지금은 가게 처마 밑이 호떡 좌판이다

쇠고기 들고 가던 아낙은

대신 순대를 샀고

순대 들고 가던 사내 지금

납작한 호떡이 되어

집으로 간다

바람 찬 겨울밤

우리 동네 정육점 처마 밑은

그래도

따끈하다

2009 `작가` 겨울호

1982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한 김수열 시인은 제주도 시인이다. 그가 펴낸 몇권의 시집에서 흔히 발견되는 시의 분위기는 대체로 수수하고 밋밋하다. 그러나 그 속엔 그만 가진 엄청난 삶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시편들이 소복하다.

이 시에 그려내는 세 컷의 사진이 읽는 이들의 눈에 그려진다. 주민들의 소통이 잦은 동네 입구 식육점 앞의 풍경이다. 장사가 잘 안되어 식육점을 폐업하고 순대를 팔기 시작한 주인은 그 순대장사 마저 신통치 않아서 급기야 납작하고 따스한 호떡장수로 변신한다. 먹고 살기 힘든 우리 시대의 한 풍경을 보여주는 시이다. 이 땅 도심의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이런 풍경 속에 녹아있는 생의 힘겨움이랄까 몸부림이랄까 뭔가 씁쓸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는 현실을 시인은 보여주면서 그래도 그 속에 흐르는 희망, 따스함의 끈도 함께 보여주는 작품이다.

<시인>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