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기찬대구취재본부장

새해 들어 오랜만에 만난 대학후배의 승용차가 바뀌어 “와 또”라는 필자의 물음에 후배는 “마음이 변해서”라고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후배는 약 2년여 동안 승용차를 세 번이나 교체하는 조금 별난 스타일이다. 후배의 스타일이 사업상의 이유도 있겠지만 조금 별나다면 필자는 그 흔한 운전면허증도 없고 아직 재산상에 등록된 자동차도 없는 승용차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욕심(?) 없는 부류에 속하는 것 같다.

그러나 주로 이용하는 전용차는 시가 1억 5천만 원 정도의 대형버스에다 기사까지 두고 있으며 연료비도 걱정 없고 1회 이용할 때 교통카드 950원(현금 1천100원)을 찍으면 목적지까지 모셔준다. 목적지까지 방향이 같지 않으면 도중에 내려 환승을 해도 된다. 환승 시에는 `환승입니다.`라는 멘트에 희열을 느끼며 `참 좋은 세상`이라고 스스로 흐뭇해한다. 그렇지만, 어쩌다 막걸리 한잔 마시고 놀다 보면 전용버스도, 기사도 내일을 위해 쉬어야 하기 때문에 필자를 마냥 기다려 주지 않는 흠(?)도 있다. 이때는 할 수 없이 택시를 이용한다. 그러나 택시를 이용하면 1주일 사용분의 교통카드 요금이 날아간다. 그래서 요즈음은 약주도 시간에 맞춰 대충 마시고 일어서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 같은 경우는 필자뿐만이 아닌 대세이기 때문에 어깨가 으쓱해진다.

지난달 16일 10년 동안 정붙이고 살던 아파트를 떠나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지 아파트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조용하고 공기까지 맑아 진작 옮겨야 했었다고 좋아했지만 30여 분 소요되는 출퇴근길이 만만찮다. 특히 올해 겨울은 유난히 춥고 배차간격이 15분 정도 되니 승용차와 택시 생각이 간절할 때도 있다. 이달 초 20여 년 만에 폭설이 내린 출근길에는 빈 택시는 줄을 잇고 있었으나 기다리는 노선버스는 오질 않아 택시를 탈까? 말까? 하는 망설임도 있었지만, 버스를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 오기로 버티기도 했다.

1개월여를 시내버스와 함께하다 보니 시내버스에는 아직도 훈훈한 정이 맴돌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교통카드를 처음 이용하는 필자에게 중 1 여학생이 “할아버지 교통카드는 그렇게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라며 친절히 가르쳐줬고 이내 “할아버지 이 자리에 앉으세요.”라며 좌석을 양보하는 여학생의 아름다운 미덕에 서민들의 정이 묻어 나왔고 또 버스를 이용하고 처음 듣는 `할아버지` 소리였지만 그렇게 나쁘게는 들리지 않았다.

이 때문인지 시내버스 준공영제 시행 이후 이용자 수가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대구시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올해 주중 대중교통 이용인구는 하루 90만 명으로 시내버스는 준공영제 시행 전에 비해 60%나 증가하는 등 이용인구가 대폭 늘어났다. 또 대중교통수단 간 환승 무료 할인제 시행으로 하루 평균 19만 명의 시민이 연간 528억 원의 혜택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시내버스 승객수가 크게 증가하는 원인으로는 이용자 편의성이 대폭 개선됐기 때문인데 특히 지난해 연말 개통한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에는 대구시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실개천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승객들을 반가이 맞이하고 있다. 그래서 요즈음은 틈만 나면 시내버스를 이용해 확 트인 중앙로를 달리며 실개천과 함께 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 콩나물시루 같은 시내버스를 이용해 등·하교하던 시절이 뇌리를 스쳐간다. 그 당시 시내버스는 정원초과는 예사였고 비좁은 틈을 노려 소매치기들이 학생들의 주머니를 항상 노리고 있었다. 어떤 학생은 등록금을 잃어버리고 어떤 학생은 가방에 넣어둔 제도기를, 또 뒷주머니에 넣어둔 용돈이 칼자국과 함께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허다했었다. 그러나 현재의 시내버스는 어떠한가. 깨끗하고 청결한데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 안전운행, 특히 CCTV 부착 등으로 인해 차내에서의 어떠한 사고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운영돼 시민들로부터 사랑받는 대중교통으로 자리를 잡았다.

간혹 선·후배들과 만난 자리에서 요즘 시대에 아직껏 운전 안 하고 버티는 사람은 필자밖에 없을 것이라고 놀림도 받는다. 그러나 필자는 개의치 않는다. 겁도 많고 평소 막걸리를 즐기는 필자가 만약 운전대를 잡았다면 하는 아찔한 생각과 함께 아직 음주운전(?) 한번 해보지 않은 `시내버스 인생이 행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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