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떠난 후에도 저 술들은 남아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사람들을 서서히 죽이겠지

나 떠난 후에도 사람들은

술에 취해

몸은 땅에 가장 가까이 닿고

마음은 하늘에 가장 가까이 닿아

허공 속을 몽롱하게 출렁이겠지

혀 끝에 타오르는 불로

아무렇게나 사랑을 고백하고

술 깨고난 후의 쓸쓸함으로

시를 쓰겠지, 나 떠난 후에도

꿀 같은 죄와 악마들은 남아

거리를 비틀거리며

오늘 나처럼 돌아다니겠지

누군가 또 떠나겠지

문정희 시집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민음사, 2004)

문정희 시인이 부르는 노래는 그 내용에 닫힘이 없다. 세상 그 어떤 시선에도 갇혀있지 않다. 그 노래는 하늘을 흘러가는 구름처럼 바람처럼 자유롭다. 술 이야기를 담고 있는 `나 떠나 후에도`라는 시를 봐도 그렇다. 시인의 마음 호주머니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그 속에 든 세 가지는 술과 노래 그리고 연애가 아닐까 싶다. 나도 언젠가는 `술`에 관한 좋은 시 한 편을 쓰고자 했다. 그동안 여인에 관한 시는 많이도 썼으니. 생활의 일부로 늘 내 몸을 따라다니는 술에 관한 시(詩) 한 편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문정희 시인의 위 시를 보는 순간 그런 마음을 내려놓아야 했다. 어떻게 이렇게 멋진 술시(詩)를 썼을까? 그도 술 속에 살며 노래하고 시를 쓰는 사람일까? 5行 “술에 취해”에서 12行 “시를 쓰겠지,” 그 사이 시행에서 시인이 펼쳐 보인, 술 속으로 들어간 사람의 몸이 짓는 행위는 내 이야기 꼭 그대로다. 우리 시인들의 노래는 “몸은 땅에 가장 가까이 닿고/마음은 하늘에 가장 가까이 닿아/허공 속을 몽롱하게 출렁이”게 만드는 술의 힘으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술 그 안에는 꿀과 악마가 동시에 존재한다. 어느 하나만을 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어쩔 것인가, 시인이여! <시인>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