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가시내 지금 어디에 있을까. 하학길 울긋불긋 코스모스길 따라 코스모스처럼 웃으며 재잘대며 집으로 가던 가시내. 빠알간 코스모스 꽃 모가지 따 손가락 사이에 끼우곤 엉큼살큼 다가가 새하얀 교복 등짝에 차알싹! 꽃도장 찍으면, 깜짝 놀라 화난 얼굴로 뒤돌아 보며 초롱한 눈 이쁘게 흘기던 가시내. 히이- 웃으며 등짝에 찍힌 꽃도장을 보며 달아나며…

너는 이제 내 각시다, 속으로 좋아라, 어쩔 줄 몰라. 흰 교복에 번질세라 등에 찍힌 꽃도장 털지도 못하고 꽃 같은 입으로 궁시렁궁시렁 욕바가지 쏟아 내다가 피식 웃어 버리던 가시내. 꽃 모양도 선명한 코스모스 꽃도장 노란 꽃술 등에 박고도 코스모스같이 웃던 가시내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한번도 생각나지 않던 그 가시내, 오늘 문득 코스모스 길을 가다 생각이 나네.

박찬 시집 `외로운 식량`

(문학동네, 2008)

이순의 나이를 지난 박찬 시인이 예쁜 꽃도장 하나를 새겼다. 그 꽃도장 참으로 곱고도 맑다. 열 몇 살 적 하학길에 빨갛게 핀 코스모스, 그 꽃 모가지를 따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새하얀 교복 등짝에 차알싹, 놓던 꽃도장이다. 시인은 그 일을 떠올리며 오래 행복했을 터이다. 지난 어린시절의 추억과 그 그리움에 많이도 목말랐으리라. 마음속에 울긋불긋 코스모스 하학길도 하나 내고, 각시도 하나 얻고. 그렇다. 지나간 시절, 지나간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 길도 시의 길 가운데 하나다. 나도 언젠가는 곱디고운 꽃도장 하나 파야겠다. 이 `꽃도장`이라는 아름다운 시를 쓴 박찬 시인은 지난 2006년 1월19일 우리 곁을 떠나 먼 나라로 발걸음을 옮겨갔다. 이제 다시는 뵐 수 없는 고(故) 박찬 시인, 새로 옮겨간 그 나라에서도 이런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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