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지가 뜯다 만 매지구름도 있다

소시장 지나 회다리 건너

첫 기차는 들을 질러 북으로 가고

마지막 배웅은 산수유 노란 꽃가지 차지다

탑리는

다섯 층 돌탑 마을

조문조문

문짝 떨어진 감실 안에서

태어나지 않은 탑리 아이들 경 읽는 소리를

귀 세워 듣고 있는

저 금성산.

박태일 시집 `풀나라`

(문학과지성사, 2002)

경북 의성군 금성면에 가면 탑리라는 이름의 마을이 있다. 마을 한쪽에 우람하고 잘 생긴 5층 석탑이 있어 그 이름이 유래된 것이다. 내 사는 포항에서 삼 백리도 넘는 거리의 이 탑을 구경하려고 서너 차례나 달려갔다. 처음 갔을 때, 함께 간 다섯 살 난 내 아이도 탑의 감실 안에 들어가 한참 후에 나왔는데 무슨 경(?)을 읽다가 나온 지 나는 잘 모른다.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 박태일의 근작 시집 `풀나라`는 평단에서 순우리말(특히 첩어)의 구사력과 시의 노래적 성격이 드높다는 찬사를 받은 바 있다. 위 시에서도, 비를 머금은 조각구름을 뜻하는 `매지구름`과 탑의 감실 안에서 아이들 경 읽는 소리를 `조문조문`이라 한 표현은 빼어난 것이다. 시상 전개도 간결하고 깔끔하면서도 매우 안정되어 있다. 모든 시의 구문이 1연에서는 “탑리는”에, 2연에서는 “저 금성산.”이라는 주어적 성격의 마지막 행에 모여 있다. 이 짧은 시를 거듭 읽다 보면 신생(新生)의 신화적 숨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환상에 젖게 된다. 이것이 시의 힘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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